10년 전과 비교하는 게 많을 편지가 될 것 같다는 걸 미리 알려.
도착한 델리공항부터... 처음 왔을 땐 공사중이라 여기저기 쳐둔 천막에 일반 고속버스터미널보다 못 한 모습에 도착과 동시에 고민이 많았던 10년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용기를 잃지 않았다.
첫 인도여행 후, 인도를 떠나며 여긴 절대 전철같은거 안 생기겠다. 싶었는데 오늘 다시 온 델리에 지하철이 있어요.
강산이 변하니 인도도 변하는구나.
여행자들은 이제 택시덤탱이 쓰지 않아도 돼요.
(그치만 조심은 해야 해. 여전히 메트로 운행 안 한다며 사기 치는 사람들은 여전하니까)
세상 좋아졌네 진짜.
지하철을 타고 빠하르간지를 다 오네.
역에 내리자마자 흙이 섞인 매캐한 공기가 맡아지는 게 몸이 기억하는 빠간이었지.
거기다 변함없는 이 혼란스러운 풍경까지.
생각보다 인도를 더 많이 그리워했나 봐.
이제 도착했을 뿐인데 여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입 밖으로 비적비적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거든.
가방을 내려놓기 위해 근처 한국음식을 파는 식당에 가서 식사 + 환전 + 정보수집을 하며 시간을 쓰고, 인도방랑기에 가서 미리 예약한 인도 유심을 개통하려는데 신기하게도 증명사진이 필요하다 그래서 생애 처음으로 인도 사진관을 가 봤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여차저차 사진 찍고 결과물도 잘 받아 유심도 개통했지.
여기서 찍은 증명사진은 한 3일 사막에서 길 잃고 헤매다가 구조돼서 신원확인하려고 찍은 사람처럼 나왔달까?
한동안 웃음지뢰용도로 사용되었어.
숙소는 여러 군데 보고 왔는데 딱 맘에 드는 곳도 없고 인도방랑기 있는 호텔이 마침 델리에서 내가 처음 묵었던 건물이라 추억을 무기로 그 호텔에 묵기로 했어.
확실히 경험의 힘은 무시 못 해.
한번 와 봤다고 여유가 있는 거야.
10년 전에는 도착한 첫날 호텔방에서 샤워하다 엉엉 울었잖아.
나를 둘러싼 모든 게 전혀 다른 건 생애 처음이었고 그로부터 오는 두려움과 혼란을 대처하는 방법은 원시적 이게도 울음이었지.
울음을 참으며 했던 부모님과 전화통화 후에 적은 일기를 보면 어떻게든 이 여행을 잘 끝내겠다는 다짐을 해놨더라.
그땐 몰랐는데 지금 일기를 보니 이 시점에 나는 좀 더 강해 졌겠다 싶어.
그렇게 다잡은 마음으로 끝낸 여행의 데이터는 이번 여행에 무수한 도움이 될 거야.
벌써 숙소, 식당을 그때의 기억에 기대 이 혼란스러운 도시에 혼돈 없이 고를 수 있었으니까.
지난밤, 작동 안 되는 에어컨에 잠 못 이루다 여차저차 해결하고 났더니 새벽이었어.
늦장 좀 부릴까 싶었지만 당장 내일 맥간 가는 버스를 예약해 둔지라 오늘 바삐 움직여야 했지.
'꾸뚭미나르'에 가보려 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인데 사실 나도 잘 몰라...
높은 승전탑이 있는 유적 진데 굳이 여길 가는 이유 중 가장 큰 건 델리를 돌아다녀 본 적이 없어서.
지하철 타고 근처까지 가서 오토릭샤 흥정해서 타고 도착한 꾸뚭미나르.
자국민 30루피, 외국인 500루피. ^^
가격차이 어이없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갈 순 없으니 떨리는 손으로 티켓 끊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승전탑.
됐다.
저거 본 걸로 됐다.
인간은 참 특이해.
높고, 크게를 고집하고 원하고 또 그걸 해내는 걸 보면 말이야.
횽아, 진짜 아는 만큼 보인다고 꾸뚭미나르에 있을 때는 몰라 어물쩡 넘어갔던 이슬람 건축특징이 이제서야 보여.
알라 외의 다른 동식물들의 신격화를 금지하기 때문에 꾸란의 문장을 캘리그라피해 사용하거나 기하학적 무늬로 건축물을 꾸민다던데 여기가 딱 그렇네.
여긴 많은 유적지가 섞인 것 같아.
돌아다녀보면 아유타야의 왓 마하탓 같기도 하고, 어느 곳은 남미의 유적지 같기도 한 것 같기도 했어.
체감온도 40도에 내가 정신을 잃은 게 아니라면 말야...?
다람쥐 마저 흙에 배를 깔고는 거친 숨만 쉬던 꾸뚭미나르에서 아쉬움 없이 구경하고 나와 간 곳은 '악샤르담'이었어.
대충 이 온도면 어디라도 들어가거나, 지하철 타는 게 건강에 좋을 것 같았지.
악샤르담은 힌두교 사원인데 실내 촬영불가라 대부분의 소지품은 모두 사원 밖에 맡기고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야.
인파가 어마어마해 소지품을 맡기는데만 1시간 정도 걸렸는데 악샤르담에 들어가 본 건축물과 레이저쇼+공연에 오길 너무 잘했다 싶었어.
인도에 이렇게 잘 관리된 곳이 있구나? 근데, 무료입장에 볼거리까지 이만큼 제공한다???
내가 꿈을 꾸나 싶었네...
레이저쇼의 황홀함에 젖어 악샤르담과 헤어졌어.
다시 숙소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 한동안 핫 했던 라쉬굴라를 파는 식당이 보여 홀린 듯 또 들어가 버렸네...
맛은...
짜릿할 정도로 단 설탕물에 졸인 스펀지
여튼, 인도 10년 전과는 많이 변했다.
나도 그렇고.
다음날,
맥간에 가는 날이야.
인도에 다시 온 다면 무조건 갈 도시 중 단연 1등인 곳이 맥간이었어.
10년전 도망치듯 벗어난 델리에서 간 곳이 맥간이었고, 거기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며 안정을 되찾았지.
그렇게 편해져 한 달 중 거의 10일을 맥간에서 머물렀어.
그곳을 오늘 다시 가.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맥간행 버스를 탈 티벳탄콜로니 어딘가까지 미니봉고를 타고 이동했어.
이미 성인 여섯 명이 우겨져서 차있는데도 자꾸만 더 태우려는 기사와 싸워 분위기가 냉랭했지만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 얼굴엔 땀이 흐르고 있었지.
도착한 곳은 티벳탄콜로니 근처 버려진 고가도로...?
아니 여기서 버스를 탄다고? 했는데 도로 곳곳 주차된 고속버스들과 근처 서성이는 수많은 사람들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버스출발까지는 인디아타임이 있었지만 30분 정도? 여서 오 선방했네~하며 버스에 올랐지.
그랬는데,
뭣 때문이지 모르게 갑자기 기사가 혼비백산하면서 버스에 탄 모두를 내리게 하더니 다시 언제 출발한다는 말도 없이 버스 문을 닫고는 해가 져서까지 버스는 타지 못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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