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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_편지/인도

Dear.35_내가 알던 맥간은 이게 아니야...

by 죠죠디 2025.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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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맥간행 버스 무한대기 사건은 이랬어.


정식터미널이 아닌 그곳은 경찰이 간간히 단속을 나오는데 어제가 딱 그날이었고, 그날따라 끈질기게 자리를 지키는 경찰에 다들 발이 묶였던 거였어.


짜증이 났지만 여긴 인도였고, 뭐 어쩌자는 건가 하며 기다리다 보니 날은 어두워졌지. 거의 4시간은 기다렸던 거 같은데 그때 지친 버스기사도 안 되겠는지 승객들을 불러 짐칸에서 짐들을 꺼내더니 오늘 못 간다고 했어.



뭐 이런...?



배낭을 찾고 티켓 예약한 인도방랑기 사장님과 통화했더니 상황 좀 알아보신다 해 기다리는 중에 상황이 다급하게 바뀌었어.

어디서 뭘 듣고 보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사는 라이트를 끈 채 차에 시동을 걸더니 사람들한테 빨리 버스에 올라타라고 했고 일사불란하게 탄 승객들을 빠르게 확인하며 우당탕탕 버스가 출발했지.
 


도망자 간접체험도 버스비에 포함됐었나?
 
 


 
'인도니까...'
마법 같은 문장이야.

이렇게 내뱉으면 그냥 웬만한 건 넘길 수 있달까. 
 


불 하나 켜지 않은 채 밤의 일부로 달리는 어수선한 버스였지만 출발했다는 사실 하나로 한숨을 돌렸나 봐.
그리고 몇 십분 후, 완전히 켜진 라이트와 실내 등 아래 뒤섞인 자리에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웃 돈 주고 맨 앞자리 구매 > 다른 사람이 앉아 안 비킴 > 해결해 준다는 직원 갑자기 버스에서 퇴근 > 인방사장님 기사와 전화 > 해결) 
 


새벽, 추워진 공기에 잠을 깨고 창 밖을 보니 버스는 맥간으로 가는 마지막 구간인 오르막 커브길에 들어서고 있었어.

곧 도착이라 선잠에 들었던 친구를 깨워 짐을 정리하고 내릴 준비를 했지.


 
잠깐... 출발시간 한참 지나 출발했는데 도착시간은 어떻게 맞췄지...?
 


 
버스에 내려 맡은 맥간의 새벽공기는 매캐한 델리와는 정반대로 상쾌했지.


10년 전, 혼자 내렸던 그때도 새벽이었는데 하는 옛 생각이 떠오르긴 했지만 젖어있을 시간은 없었어. 왜냐면 6월은 인도인들의 여름휴가철로 맥간을 포함한 북쪽도시들의 최대 성수기였거든. 
 
맥간이 변했는지 어쨌는지는 뒤로 미루고 곧바로 숙소를 찾아야 했어.
다행히 나는 맥간의 길과 숙소 위치들을 알고, 대충 본 맥간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 
 
곧장, 제일 가까이 있는 맥간에서 저렴하고 오래된 숙소인 '옴게스트하우스'에 갔는데 세상 무슨 일인지 하룻밤에 700루피(비수기 250~300루피), 그마저도 지금 당장은 빈 방이 없어 대기해야 한다는 거야.


사실, 옴은 마지막 보류인 숙소였는데 옴이 이 정도면 다른 숙소는 더 알아볼 거도 없다는 결론에 바로 대기 및 배낭 맡기고 나왔어. (다행히 체크인할 수 있었음)
 
 

이 숙소의 대미는 방이 아니라 방 문 열고 나오면 펼쳐져 있는 풍경이야(날씨 좋을때)

 
입맛이 없는 이른 시간.


경량 패딩을 입어야 하는 맥간날씨에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러 들어간 카페에서부터 모든 걱정으로 자유로워졌달까.

내내 다음을 대비해야만 했던 상황에서 벗어났단 해방감에 식욕까지 돌아 모모와 똄뚝을 먹으며 변함없는 풍광에 맥간에 있음을 제대로 느꼈어.


 

 
카페테라스 자리에서 일어나 10년 전 같은 자리에서 봤던 풍경을 다시 눈에 담으며 그때 머물렀던 숙소를 찾아가 보자 싶었어.

껄떡 계단이라 부르던 계단을 내려가 기억을 더듬어 찾는 중, 꽤나 지친 채 계단에 걸터앉은 한국사람을 만났어. 얘기를 나눠보니 그도 몇 년 전 인도에 왔던 사람이었고 그때의 기억으로 숙소를 찾는데 성수기란 변수는 생각도 못 했던 거지.
맥간 도착이래 내내 풀북킹이란 대답만 들었다는 거야.


나도 그렇지만, 그녀의 기억 속 맥간도 오늘 같은 모습은 절대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겠더라.


도착 전까지 나의 맥간은 조용하고, 여유로우며 나와 비슷한 생김새의 티베트인들에게 안정을 느끼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그 좁디좁은 골목길뿐인 이 작은 마을까지 남인도부터 굳이 굳이 끌고 온 차 안에서 쉼 없이 울리는 경박한 클락션 소리와 그 차들 빈틈빈틈을 채우고 있는 여행자들로 가득이었지.
 

 
그래도 메인도로를 벗어나면, 차분하고 소근소근거리는 예전 내가 알던 맥간을 쉽게 찾을 수 있었어.


남걀사원에선 여전히 많은 승려들이 삼삼오오 모여 박수를 치며 토론을 하고 있고, 마니차있는 곳엔 마니차를 돌리며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과, 길거리에서 파는 매콤 맛있는 량피까지 여전했지.


 


무엇보다 여전한 이 식당.

맥간에 유일한 일본식당 '룽타'.
실내 인테리어도, 테라스 자리도, 양이 어마어마한 오므라이스도 그 안에 진밥도 변함없이 그대로인 모습에 만감이 교차했네.
 




 
오롯이 혼자는 처음이라 그 낯선 시간 안에 나를 어떻게 할 줄 몰라 계속 무언가를 해댔었지.
 
그러다 여기, 이 식당의 오므라이스가 인도에서 마주한 것 중 유일하게 낯설지 않은 거라 웃기게도 나는 마치 내 편을 만난 듯 혼자 차오른 마음으로 오므라이스를 먹었잖아.


남김없이 다 먹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어림없었지.
그게 못내 아쉬웠지만 그 뒤로 오므라이스는 다시 안 시켰었어.
 다시 시키는 그 날은 다 먹을 수 있을 때 라며 미뤘던 날이 오늘이 될 줄... 그때도 지금도 모를 일이었네.
 
 


 

맥간을 돌아다니다 보면 신문지에 동그랗게 싼 무언가를 사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
그게 궁금해 검색해 봤더니 아침에만 판다는 티베트인들이 먹는 빵이었지.
 

다음날, 일찍 일어나 사러 갔더니 딱 봐도 맛을 알겠는 기본 그 자체의 빵이었는데 난 또 이런 빵을 좋아하니까 사서 하루종일 과자 먹듯 뜯어먹었어. 


심심하게 생긴 애들이 가만 보면 후에 번뜩번뜩 생각나곤 한다니까?
 

 
확실히 식문화가 비슷하면 금방 그 나라가 편해지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


유럽을 오래 여행하다 보면 왜 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젓가락을 사용하고 싶어 져서 일부러 중국식당을 찾아가곤 했었어. 

집에선 별로 찾지 않던 쌀밥은 왜 그렇게 먹고 싶어 지고 김치찌개에 라볶이까지 좋아하지도 않는 기본적인 음식들이 번뜩번뜩 떠올라 잠들기 전의 나를 괴롭히곤 했는데 여기선 그럴 걱정이 없어.



 
 
밥 다 먹고 10년 전엔 맘씨 좋은 사장님이 운영하시던 pc방(1학년 2학기 시간표를 여기서 짰었는데...)이 있던 자리에 생긴 신식 카페에 갔어.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는 카페라니 진짜 생각도 못 했다.
예전과 같을 거란 기대에 실망했지만, 기대하지도 않은 변화가 있어 감동하는 인도여행이라니 점점 특별해지지 뭐야.
 

그나저나, 여기 터가 그런가?
그때 피시방 사장님도 너무 친절하셨는데(갑자기 비 오니까 우산 없이 온 나한테 선뜻 우산 주시면서 다음에 가져오라고 하셨거든) 카페 사장님들도 너무 친절하시네 커피맛도 좋고 말이야.
 
그리고 횽아, 주황색이 카페랑 잘 어울리는 거 같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어.
날이 추워서 그런지 금방금방 피곤해지더라구. 
그렇다고 방에만 있기엔 싫어서 방문 열면 바로 공동 테라스라 거기에 앉아 있는데 점점 원숭이가 가까이 오는거야. 설마 여기까지 올라고 했는데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음식 놓인 식탁 위에 올라 와 식기 다 뒤집고 빵을 도둑질해갔다.
 

 
그걸 본 우린 절대 숙소에서 밥 먹을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날 저녁도 숙소 밖 외식이었어.
 

피자를 맛있게 만든다고 해서 왔다가 소스에 홀려 한 번 다시 온 식당이야. 메인도 당연 맛있었는데 저 주황소스가 맵고, 부드럽고 아주 만능 소스더라.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혹시 팔고 있으려나? 다음에 와서 알아보지 뭐.
 



맥간은 특별히 뭘 하고 싶어 온 게 아니라 먹고, 쓰고, 마시고, 걷는 생활로 하루를 보내.

이 중 그 어느 하나 지루하지도, 질리지도 않아 몹시 만족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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