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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보다

영화06_피아니스트의 전설

by 죠죠디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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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 타다 우연히 보게 됐다.

40분만 타려던 사이클을 운동 종료와 동시에 꺼지는 모니터 때문에 1시간 20분을 탔고, 스트레칭 그런 없이 바로 러닝머신으로 뛰어가(사이클만 2시간 할 수 없으니까) 속도를 올리기 전에 모니터 채널을 맞췄다.

그리고 그날 운동은 영화의 끝을 보고 나서야 끝이 났다.

 

제목만 보고 영화 '피아니스트'랑 헷갈려서 긴가민가하며 보기 시작했는데(당연하게도 두 영화는 완전 다른 내용), 이 영화는 버지니아호에서 나고 자란 천재 피아니스트 나인틴 헌드레드의 삶과 트럼펫 연주자로 승선한 맥스와의 우정 이야기... 라고 짧게 설명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우선 그렇다고 치자.

 

 


내용도 내용이지만 장면 장면들이 참 예뻤다.

특히, 강한 풍랑에 심하게 흔들리는 배에서 처음 만난 둘이 연회장에서 고정쇠를 풀고 피아노를 연주하며 파도를 타는 둘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판타지 영화 같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때 나인틴 헌드레드가 연주했던 피아노 곡명이 'magic waltz'인데 제목 너무 찰떡이고요.(음악감독은 그 유명한 엔리오 모리꼬네)

 

 


두번짼,
재즈 창시자인 젤리와의 피아노 배틀에서 승리한 나인틴 헌드레드의 음반 제작 중 창 밖에 있던 한 소녀를 보고 나인틴 헌드레드가 즉흥적으로 피아노곡을 연주한다. (그러나 28살 성인이 17살 미성년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게 아 너무 불편하고요.) 곡 이름은 playing  love. 


맥스는 계속해서 나인틴 헌드레드에게 배에서 내려서 살아보라고 한다. 진짜 삶은 육지에 있다며…
그의 연주 실력이라면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다른 사람들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며 결혼하는 평범한 삶을 살면 좋지 않겠냐며 꾸준히 그를 회유한다.




그러나 그건 맥스가 원하고 바라는 그의 삶일 뿐이다.

버지니아호에서 나고 자란 나인틴 원헌드레드에겐 배 안에서의 삶이 진짜 삶이고, 평범한 삶이다. 
배 안에서 하지 못 한 거라곤 연애와 결혼뿐 따지고 보면 타고난 천재적인 재능으로 이미 의식주에 별 탈없이 충분히 잘 살고 있는 나인틴 원헌드레드였다.
그저 뭐랄까… 소중한 사람을 빨리 잃은 상실과 알아서 자란듯한 성장과정이 보는 사람으로 안타까울 뿐이지 굳이 비교해보자면 나인틴 원헌드레드의 삶이 배 밖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연주자로 승선할 수밖에 없던 맥스 삶보다 부족하다거나 거짓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또한 나인틴 원헌드레드가 육지의 삶을 원했다면 이미 애초에 배에서 내렸을 거다. 어느 날 갑자기 맥스에게 하선하겠다며 선언하고 곧바로 실행하는 그의 추진력을 보면 말이다.
그는 홀로 연주하고 있던 어느 날 한 남자와 나눈 대화에서 자신도 경험하고 싶은 일을 듣게 되었고, 앨범 녹음하다 우연히 본 소녀에게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며 자신의 세상 밖의 것을 욕망하게 된 것이다. 

 

하선 당일, 버지니아호 사람들과 작별인사 나눈 그는 머뭇거림 없이 곧바로 배와 육지를 잇는 계단을 내려간다.
하나, 둘, 셋…. 갑자기 계단 중간에서 걸음을 멈춘 그는 한참 말없이 서서 육지를 바라보다 쓰고 있던 모자를 바다 위로 날린 후 몸을 돌려 다시 배로 돌아간다.


왜?

그 이유는 훗날 철골만 남은 버지니아 호 안에 설치한 다이너마이트 위에 연미복 차림으로 앉아 맥스와 오랜만에 재회한 나인틴 원허드레드가 말해주고 둘은 그날 다시 작별한다. 영원히.

 

 

 


이 배에서 내려올 수 없었던 나.
나를 구하려고 내 인생에서 내려왔지 한 계단 한 계단. 하나의 계단은 하나의 욕망이었어.
매 걸음, 욕망에게 작별 인사를 했어.






그 도시 전체에 끝이 보이지 않았어
끝 말일세. 대체 그 끝은 어딜 가면 볼 수 있나?

시끌벅적했지 그 빌어먹을 사다리에서... 모든 게... 무척 아름다웠지, 그리고 코트를 입은 난 근사했어.
끝내줬다고.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 내가 내려가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이었으니까. 문제 될 건 없었어.


(...)


나를 멈춰 세운 건 자네가 본 게 아니야.
자네가 보지 못한 것이야.
이보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자네가 보지 못한 것......
난 그걸 찾았지만 없었고 그 거대한 도시 전체에는 그것빼고는 전부 다 있었어.
모든 게 다.


하지만 끝은 없었지. 당신이 보지 못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끝나는 곳이야. 세상의 끝.


피아노를 생각해봐. 건반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어. 우리 모두 그게 88개라는 걸 알지. 건반은 무한한 게 아니야. 당신, 당신은 무한하고 그 건반들 속에서 무한한 것은 당신이 만들어내는 음악이야. 건반은 88개이고 당신은 무한해. 난 이런 게 좋아. 사람은 무한하게 살 수 있지.


 만약 내가 그 사다리 계단에 오른다면 내 앞에 수백만개의 건반이 펼쳐지겠지. 수백 개, 수십억 개의 건반
끝없이 이어지 수백 새, 수십억 개의 건반들, 진실은 이거야. 끝이 보이지 않는 건반, 피아노 건반은 무한해. 
건반이 무한하다는 건, 그건 그 건반 위에서 당신이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은 없다는거야.
피아노를 잘못 선택한 거야. 그건 신이나 연주가 가능한 피아노인 거야.


맙소사, 여기 이 길들 보여?

길만 해도 수천 개인데, 그중에 어떻게 하나를 선택하지


(...)


그 세상 전부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는 그 세상, 이 넓디넓은 세상, 그 광대함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단지 생각만으로도 산산조각나는 게 두렵지 않은가? 거대한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


(...)


난 이렇게 사는 법을 배웠어.
내게 육지는 너무나 큰 배야. 어마어마하게 긴 여행이야.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야. 너무나 강렬한 향기야.
내가 연주할 수 없는 음악이야.

날 용서해.
난 내려가지 않을 거야.
다시 돌아가게 날 내버려둬.








/
기대를 했건, 안 했건 어떤 시작을 지나 그 과정과 끝에 나의 생각이나 감정에 뭔가가 일어나게 되는 경험을 한다면 아주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가 딱 그랬다.

다른 세상, 다른 삶을 살았더라도 우리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으니 그렇게 남은 생을 살아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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