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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읽다

책26_악어 노트_구묘진

by 죠죠디 2022.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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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
당신의 한 시절이 흑백의 90년대 홍콩영화처럼 내 앞을 흘러간다.

당신이 있는 곳은 명확히 대만인데도 홍콩영화 같다고 느꼈던 건 (개인적으로) 내가 떠올리는 대만은 필름 카메라의 사진처럼 쨍하지 않고 특유의 파스텔 색감으로 아기자기하거든.
근데 당신의 '악어 노트'는 당장 쏟아질 것 같은 비를 머금은 먹구름이 가득 껴 오전인지 오후인지 시간을 가늠할 수 없이 어두컴컴한 날씨가 온갖 색들의 채도마저 삼킨... 그래, 대부분 단색으로 꾸게 되는 꿈의 영상 같다.



꿈이었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당신도 나도.
왜냐면 읽는 내내 당신 또래에 겪고 묻어둔 일들이 툭 툭 튀어나와 그때의 마음이 일었거든.




어떤 때, 상황이었다면 당신 안을 휘몰아치며 괴롭히던 불안과 공포, 고뇌와 슬픔을 덜어낼 수 있었을까? 그래서 사랑을 잘 받아들이고 사랑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사랑을 사랑하며 잘- 살아갔을까.

당신의 30대, 40대, 50대가 궁금했다.



그나저나 참 이기적이더라.
당신에게서 풍기는 분위기와 일과 타인을 대하는 행동이 어른스럽다고 느꼈는데, 정신없이 복잡한 스스로에 대해 끙끙 혼자 외로이 생각하더니 '수령'으로부터 비겁하게 말없이 도망치던 당신.
그리곤 또 한가득 애틋한 마음에 잊지 못 하고 서로를 다시 찾더니 당신 또 말도 않고 혼자 도망쳤지. 왜 그렇게 비겁했어?



한 번,
이별 후 얻은 기회에 소범과 함께 할 때처럼 그랬다면 당신과 수령은 서로 소중한 사람으로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었을 거야.
일기와 편지에 쓰는 글들을 소리내어 수령에게 말해주고 서로 함께 기대며 시간을 보냈다면 4년, 짧지 않은 당신의 대학생활이 내가 생각한 대만처럼 아기자기하고 아름드리 파스텔 톤의 풍경 같았을 거라 난 생각해. 다행히 늦지 않고 당신에게 그런 순간이 있더라.
완벽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마음과 마음이 닿아 당신이 소범과 함께 살며 서로를 위해 열어둔 방문이라던가, 문 틈으로 보는 시선, 같은 식탁에 앉아 나누는 대화와 함께 먹는 아침 식사, 꼼꼼히 덮어주는 이불과 잠든 모습을 바라보는 소중한 순간들을 당신이 알게되어서 나 또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겠어.



근데 또 한편으론 그 당시 당신이 처한 상황이나 마음이 어떨지 나는 또 너무 잘 알아서 갑자기 서러워져 몇 번의 한숨을 내쉬었는지 몰라.
'너한테 해 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너를 만나도 되는 걸까.'
'의미 없어도 괜찮겠어?' 하고 말했던 사람이 내게도 있었으니까.


라즈,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해 줄 말이 있어.

내겐 당신의 '탄탄'같은 선배에게 들은 말인데,
'사랑은 둘이 하는 거지 혼자서 하는 게 아니야.'
덧붙여 뒷 설명은 따로 하지 않을게.
당신이라면 단번에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했을 테니.



추신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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