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곤할 일 없는 'P' 둘의 여행기.
우리 목적지는 있었다.
잠깐,
중간에 좀 흐릿-해졌나?
그럼 뭐 '경상북도'라고 하자.
여행을 약속한 건 꽤 오래전이었지.
'갈래?' 하는 물음에 '그래!'하고 답하는 동시에 여행은 계획된 거였다. 물론, 그 외의 다른 계획에 대해선 출반 전 날까지 따로 나눈 말은 없었다만 둘 중 누구도 '못 가겠는데?'한 이는 없으니 어쨌든 가는 여행이었다지.
그러나 마냥 맘 편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는데 여행이던 그 주가 황금연휴. 거기다 주말 출발이었다는 것.
숙소도 예약 안 했지만 차선책으로 한증막, 찜질방을 알아놨으니 뭐 그래도 어딘가에 등은 붙이고 잠은 자겠지란 두루뭉술한 답을 도출하고 나니 새벽이었어. 제발 숙면하길 바라며 잠에 들었는데 나 좀 불안했는지 늦잠 자서 헐레벌떡 일어나 진땀 흘리며 준비하는 꿈을 1차로 꾸고, 2차로 등장인물 오백만 명 나오는 꿈을 연달아 꾸다 갑자기 번쩍 깼더니 약속시간 2분 전.
내 꿈이 이렇게 바로 이뤄질줄이야?
서둘러 머리맡에 둔 휴대폰을 켰더니 그 어떤 메시지 알림 없이 깨끗한 상태였지.
횽이는 이미 다 알고 있었어. 지금 일어났다 이실직고는 못 하고 '일어났어?'하고 얼버무려 보낸 내 메세지에 '오-일어났어?' 하며 "천천히 준비해. '내가 그리로 갈게.'" 라고 말해준 쏘 서윗한 횽이.
감사합니다,
땡큐.
아침까지 든든히 먹고 만나 본격 출발하기 전, 네비용 목적지로 '경주 보문단지'를 찍었더니 거의 350km.
기껏해야 동네 운전에 멀리 간다해도 30km 내외로 다니다 열 배 뻥튀기된 낯선 숫자가 익숙해지기까진 시간이 좀 필요했어.
도시라도 훅훅 바뀌면 출발지에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구나 할 텐데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경기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거리마저 200km대에서 줄어들지 않는 게 경기도 뫼비우스 띠에 갇힌 건가 싶었지.
경기도 넌 너무 넓더라...
도시 이름과 함께 달라진 차창 밖 풍경에는 높은 건물 대신 색이 변하기 시작한 산과 그 위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뽀얗게 피어오른 산안개가 마치 신선이 타고 다니는 근두운처럼 산 여기저기에 걸려 있는 게 사람... 아니 나를 홀리더라.
꼭 아크릴로 그린 산수화 같은 몽환적인 풍경을 함께 보며 좀처럼 줄지 않는 거리에 대한 지루함을 조금씩 잊었나 봐.
2시간 운전엔 15분 휴식
무조건 무조건이야
우리가 유일하게 지킨 일정 하나_ 2시간 운전에 15분 휴식.
횽이의 강매 같은 권유에 처음엔 상관없어~ 괜찮아. 하고 손사래를 쳤지만 결과적으로 첫 휴식에 15분 꿀잠 잤다. 비가 투다닥 떨어지는 시끄러운 소리에도 개운하게 자고 일어난 후부턴 암말 않고 2시간 운전에 15분 휴식은 이마에 꽝꽝 새겨뒀어.
횽아,
우리 이번 여행은 계절 색에 감탄 한 여행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12시면 점차 그친다는 비는 멈출 생각하지 않았지만 뿅! 하고 노랗게 익은 벼들이 넓게 펼쳐진 풍경이 펼쳐졌지.
비 내리는 흐린 하늘 아래 짙은 노란색의 장면은 어쩐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같았어. 날씨 좋은 날이었다면 내리쬐는 해와 부는 바람에 흔들려 반짝거리는 모습도 추가해 볼 수 있었겠지만 짙은 명암 없이 평평해 보이는 듯 한 이 날의 풍경이 난 맘에 들었어.
풍경에 눈을 못 뗀 횽과 그걸 읽은 네비를 따라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니 거긴 '상주'였지.
둘 다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도시를 이정표에 적힌 장소 하나를 골라 저기 갈까? 하고는 네비를 껐어. 이때, 난 어릴 적 뒷좌석에 앉아 지도도 없이 운전하던 아빠를 보며 느꼈던 '어른스러움'을 잠깐 나한테 대입했다.
음... 어른스러운 순간이었지.
'상주 낙동강 생물자원관'_핫하디 핫한 상주의 명소인 듯?
우린 들어가는 대신 그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짧은 산책을 했어.
차로 지나치며 봤던 넓은 논밭은 아니었지만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섞인 자연 내음이 '훼이싸이'였나....? 찬물밖에 나오지 않는 숙소에서 샤워하기 두려워했던 그곳 공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횽 뒤를 따라 걷는데,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야.
십 년도 더 된 여행이 콧 속으로 같이 들어온 기분이었어.
그때와 우리 많이 변했나?
오늘, 쌀쌀하고 흐린 날씨가 제격이었다고 생각해.
지구 침공 후 살아남은 자가 된 것 같았던 영천에서 어렵게 마친 식사, 흑맥 대신 양말을 산 마트, 와인 사야 한다며 신나게 들어간 편의점, 기록하기 위해 들어간 카페, 스프링 하나 없이 딱딱한 침대가 있던 숙소까지.
왜인지 모르겠지만 날이 좋았다면 의아해했을 것 같아.
실은 뭐,
날이 좋았다면 좋아서 감탄하며 그때와 수평선에 있는 기억을 떠올리며 비슷하게 글을 썼을 테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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