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떠났다.
일어나자마자 최영화 빵 사러 나갔던 아침 산책이 마지막 경주의 일정이었다.(산책 메이트: 칼바람)
언제고 떠나야 했지만 막상 그러자니 서로 인사 없이 몰래 떠나는 기분이었다.
내 마음 한 조각 여기 아무 곳에 흘려둔 게 이렇게 마음을 무겁게 할 줄이야.
오래전부터 지도에 찍어둔 별 중 하나였던 '문경새재'에 들르기로 했다.
거기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가 있다는 피드를 본 후 '아름다움'에 꽂혀서 간직, 간직해둔 장소였다. 언제든 가봐야지 했는데 그게 이번 여행 마지막 일정이 되었지.
날이 또 새파랗게 좋았다.
왜 현실로 돌아가는걸 힘들게 자꾸 이러는 거지?
한산한 도로를 지나는데 이전까지 별말 없던 횽이가 야생동물 주의 표지판이 나오면 '꼬라늬' 하고 소리를 냈다. 꼬로록 하고 내는 소리랑 비슷한 목소리가 웃겨서 그냥 웃고 넘겼는데... 미래를 위한 주문이었나?
얼추 두 시간 걸려 도착한 문경새재는 뭐 거의 사람이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널~럴~하니 관광객도 없었다.
가게들이 영업을 할까? 걱정돼서 주차하면서 목을 빼고 스타벅스를 내다봤는데 음.
아름답다면서요...
아름답다는 뜻 몰라요? 나 정말 실망했어요.
문경새재 스타벅스만 보고 온 사람인데 혹시 나 같은 사람이 지금 대기 중이면 가즤마.... 근데, 스타벅스 아니고 도립공원이 가고 싶은 거면 출발하시오.
전날부터 꽂힌 말차에 스타벅스에서도 말차 라테(+말차 파우더 2) 해서 마시는데 아주 쌉쌀하니 딱 좋았다. 최애 음료 찍어두고 2층 좌석에 앉아 각자 시간을 보내며 못다 한 말들을 종이에 쓰고 좀 걷자며 나와 하늘이 짙어질 때까지 걸었다.
바로 옆에 있는 도립공원을 걸었다.
그리고 우리는 고라니를 마주했다.
깊은 산속도 아니고 산책로 초입부였는데 고라니 응?
앞으로 고라니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꼬라늬'하고 고속도로 야생동물 주의 표지판이 보일 때마다 외치면 주문처럼 작동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건 거짓말입니다만
우리는 만났어요. 네.
공원은 나무랑 길뿐인데 왜 재미있을까.
풍경하며 길이며 산에 걸린 해 높이의 시간 하며 생전 처음 보는 풍경에 보고 있음에도 의심하게 만들었다. 가만히 서서 해가 지는 모습을 지켜봐도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처음 온 여행자는 그 뒤에 있을 것이 궁금하니까, 기대하니까 멈춰있지 못했지.
흙길을 따라 산으로 들어갔다.
맑디 맑은 물이 있는 곳에서 여름휴가를 야기했고, 피톤치드 터져 나오는 찬 공기를 들이쉬며 단풍이 더 짙게 든 가을을 떠올렸다. 눈이 많이 내릴 겨울에는 횽이 알아본 세상 흰색뿐이라는 그곳으로 가야지.
한 해 계획 뚝딱이다.
그리고 다시 출발,
마음이 원하는 방향과 정반대의 도착지로의 출발.
밤이 되어 집에 도착했다.
얼마 없는 짐을 풀어 정리하고 아침에 산 최영화 빵을 자랑스럽게 식탁 위에 올려놓으니 여행 마무리가 돼버린다.고작 3일이었는데 홀로 누워있는 내 공간으로부터 느껴지는 이질감이라니. 참.
다녀온 게 허상은 아니었는지 까만 방을 더듬어 핸드폰을 켜 사진첩을 열었다.
지난 3일을 남긴 사진을 한 장씩 보며 안녕.
안녕!!
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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