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내내 바람이 와장창하고 불었어.
태풍이 온건가 싶었는데 일어나 창문을 여니 지난밤 흐린 하늘 속 구름을 데려가느라 그리 세게 불었나 봐.
새파란 하늘이 맑디 맑았지.
부는 바람의 세기를 아침에 기억한다는 건 깊이 잠을 못 들었다는 이야기지_나도 횽아도.
당연히 피곤했을 테지만 피곤해하지 않았던 건 '경주', 오늘 경주에 가기 때문이었어.
원래 이번 여행의 목적지가 경주였잖아.
둘 다 아주 오랜만이자 갈망한 곳이었는데 생각해보면 또 딱히 좋아하는 곳, 하고 싶은 게 있는 게 아니었지.
순수하게 경주에 오고 싶었네 우리?
이미 알고 있겠지만 횽아,
경주 가는 중에 지났던 '광명동' 풍경이 진짜 여전히 너무 생생하다 나.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에 카페인 한 톨도 안 마셨는데 두근거리며 반응하는 심장에 아 여기가 내가 살 곳인가? 했다니까.(긁는 복권 바꾸러 간다.)
훗날 그때 경주에 가게 된 이유 중 하나가 그곳이 내가 살 곳이었다는 걸 확인하게 된 거였다고 웃으며 말할 수 있기를 바라.
아쉬움 한가득 내려놓고 한산한 일 차선 도로를 따라 운전하니 이정표에 '태종 무열왕릉'이 적혀있었어. 내가 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정표를 보는 순간 '옴마야, 진짜 경주에 왔나 봐.'하고 확실히 확인했지.
이럴 때마다 참, 신기하다고 생각해.
생생하게 그 순간에 살아있으면서 비현실 같다고 느끼는 것. 더 극적으로 감각하기 위해서 그러는 건가.
목적지까지의 거리 0km.
'동궁과 월지' 주차장에 주차하고 드디어 경주에 발을 딛었지. 아- 경주.
경주!!!!!!
경주에 도착한 것만으로 오늘 하고 싶은 일은 다 했지.
박물관을 가고 뭐 산책으로 여기저기를 가고 했던 잡아두지 않은 계획 중 그 어느 것 하나 하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만족한 하루였지만,
이제 아침 열 시를 넘긴 시간.
밥은 먹어야지.
배부를 테니 산책도 좀 한 다음 커피는 당연히 마셔야 하고.
또 나 그 뭐야 경주빵, 황남빵 이거 먹고 싶은데!?
나 경주에서 할 거 많았네?
횽의 유일한 계획이었던 리초야에서 말차 라테 한 잔을 마시고 횽과 헤어졌지.
나는 어딜 갈까 하다가 대릉원으로 들어갔어. 천마총이 있었는데 길게 선 줄을 보고 내가 들어갈 리가 없지. 애초부터 천마총을 보러 들어간 것도 아니었고. 그냥 공원을 여유롭게 걷고 싶었거든. 근데 거기 여유롭지 못했다?
그래도 반은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지.
횽과 다시 재회 후, 차로 가던 길에서 샛길로 빠져 '오릉'까지 갔다가 잘 못 고른 방향에 크게 한 바퀴 도는 우리...
이 구역 걷기 왕.
근데 진짜로 나 경주가 좋았던 건 걸어 다니기 좋은 곳이어서였다.
곳곳에 공원도 많고 쉴 의자도 있어서 날 좋은 날 굳이 카페나 실내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거. 나... 이사해야 하나?
우리 여행 마지막 산책_ 경주 밤 길.
잠깐 눈 붙이고 나와서 그런가 서울보다 남쪽인 경주엔 벌써 겨울이 찾아왔는지 가져온 옷들 몽땅 껴입고 두툼해져 나왔는데도 밤바람에 코가 시려웠지.
근데 그 찬 기운의 바람이 며칠 전부터 그리웠던지라 나는 솔직히 기분이 상쾌했어.
겨울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유 없이 건조하게 피부를 차게하는 바람을 맞고 싶어 추운 여행지를 찾고 있었는데 여러모로 경주 나와 너무 잘 맞았었어.
어두컴컴한 길을, 공원을 걸어 경주에서 보고 싶었던 모습을 싹-다 둘러본 오늘 산책의 하이라이트는 '보름달'.
월정교를 건너다 말고 횽이 알려줘 본 크고 밝은 달에 나는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기면서도 계속 달을 쫓았어.
달이 그냥 달인데,
달이라서 눈을 못 떼겠더라.
둘이 나갔다가 노란 달과 함께 마친 경주 밤 산책.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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