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에 가고 싶었다.
덕수궁,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숱하게 다녔는데 종묘, 종묘만 가보질 못 했다.
가야 할 이유가 딱히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름답다고 하니 (혼을 모아둔 장소를 아름답다고 해도 되려나...?) 보고 싶었다.
그래서 횽에게 종묘에 가자고 했다.
비가 온다고 했나?
꾸물거리는 날씨가 쫓아오지 못하게 버스를 타고 몇 개의 동네를 너머 중구에 도착하니 버스 유리에 물 방울이 떨어졌다.
내가 비구름을 따라간 건가...
먼저 도착한 횽이가 있는 카페로 가니 노랑 노랑하니 귀여운 겉모습 속 헤비메탈의 영혼이 숨겨져 있는 곳이었다.
가득 찬 사람들의 말소리도, 매장 내에 틀어놓은 음악 소리도 둘 중 누구 하나 질 생각 없다는 듯 사운드 세게 터져 나왔다.
횽이가 한산한 카페를 생각했다는데
종로는 글쎄...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곳에서 우리는 편지를 썼다.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도저히 못 쓴다는 횽이도 해냈다. 그리고 바로 우리는 카페를 나왔다.
드디어 종묘로.
매번 지나가는 종묘로 가는 길. 비가 투두득 하고 떨어졌다. 느낌이 싸- 한 게 횽이가 설마 휴관은 아니겠지? 하고 농담하길래
에이 설마~ 아니겠지 했는데 그랬다.
종묘는 매주 화요일에 휴관이었다. ^.^
아니 월요일도 수요일도 아니고 화요일에 휴관이라니요?????
왜 나한테 연락 안해줘써? 종묘 그러기 이써?
어쩌겠어.
원래 오늘의 계획은 산책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종묘 돌담길 옆으로 걸어 나갔다.
발걸음에 맞춰 시작한 대화를 끊지 않고 이어나가는데 세상 힙하고 조용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가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져 나왔다.
아쉽지는 않았다. (크게는...)
그래서 아마 이 길목에 있는 카페 중 한 곳에서 만났다면 아직도 편지는 다 못 쓰고 의자에서 궁둥이도 못 떼고 널브러져 있었을 거라며 깔깔 웃으며 카페 거리를 빠져나갔지...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로 가득했던 인사동 길의 한산함에 방콕에서 맛에 감탄했던 중식당이 폐업했다는 구글 지도의 알림이 떠올랐다.
얕은 탄식이 나온 눈앞의 풍경 너머 저 멀리 타지에서의 추억이 내게는 더 컸는지 횽이 옆에서 어! 맞아! 하고 큰 소리로 그 중식당의 소식을 횽에게 전달했다.
식당의 존재와 폐업의 소식을 동시에 알게 된 횽은 짧게 한 마디 했다.
"야이..씨"
히히히히,
너무 재미있었지. 이번 종묘... 종묘라고 해도 되나?
그냥 종로라고 할까?
길이를 알 수 없는 줄자만큼이나 쭉쭉 이어지는 대화에 횽과 함께라면 그곳이 어디든 멋진 바캉스를 보낼 수 있을 거야.
그게 3시간이든, 반나절인든, 2박 3일이든.
근데 그중 어느 곳이 치앙마이였으면, 부에노스아이레스였으면, 멕시코의 4계절 내내 봄이라는 그 어디였으면 손톱만큼 더 좋을 것 같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휴, 생각만으로 신이 다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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