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준비한 건 아니었는데,
좀 느리게 움직였나봐.
만나기로 한 시간에서 한 시간을 더해서야 만나기로 한 장소는 몇 년 전 겨울 내내 매일 오갔던 경험이 가득한 곳이었지.
'구파발' 나는 여기만 생각하면 그렇게 손, 발, 코... 모든 감각들이 시려와.
횽이 생각해둔 곳은 시간이 늦어 못 가고 대신 산책로가 있다는 카페로 버스를 타고 가는데 나 또 어디 여행 가는 것 같고 그래서 좀 두근했쟈나.
처음 가는 낯선 길을 불안함 없이 갈 수 있는 일은 내가 용감한 것보다
함께 하는 사람의 힘이 더 크다는 걸 매번 횽을 만나는 날 경험해 나.
도로 중간 덜렁 세워준 정류장이었지.
바스락 낙엽들이 떨어진 길을 얼마 걷지 않았는데 공기부터 다르더라. 서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청량한 공기와 트인 시야를 갖게 될 수 있는걸 올해 톡톡히 알게 되었어.
올해 4계절을 온전히 다 보고 있다고 생각했어.
계절의 원색_을 시간 맞춰 제대로 보았다고 그래서 빠짐없이 올 한 해를 꼼꼼히 다 느끼고 있는 것 같아.
이게 그 시간엔 별 일 아니라며 그냥 지나쳤는데 가만히 멈춰 떠올리니 이만큼 한 해를 만족스럽게 보내는 일도 없는 것 같더라.
생각보다 작은 산책로였던 카페에서 나와 우린 뒷편 길을 따라 걸었지.
마을에서 나는 내음이 자꾸 향수를 불러일으켜 외할머니댁에도 갔다가 라오스에도 갔다가 다시 그 길을 걷다가 바뻤지. 하지만 그 길도 길지 않아 다시 돌아 저수지를 찾아 걸었잖아.
해가 금방 질 테니 가까워야 할 텐데 하고 걷는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가깝네 또.
가을,
언제 이렇게 가을이 또 왔지.
붉은 해가 낮고 강하게 진 시간에 맞춰 산에서 나와 걸었던 길을 다시 따라 마을 밖으로 나가.
검은 연기 나는 집에선 저녁밥을 짓는 걸까.
아무것도 아닌 것을 태우는 걸까.
가마솥 막 지은 밥을 생각하다 또 우리 외할머니댁 옛 부엌이 생각나서, 아랫목이 떠올라 기분이 좋았지.
버스를 타고 다시 도시로 돌아갈 시간.
도시는 춥고, 바쁘고, 정신이 없어.
그래도 횽이 찾은 식당의 밥은 맛있어서 싹싹- 다 먹고,
도시 근처 시골에서 살기 위한 꿈에 열 발자국 빨리 도달하기 위해 로또를 샀지.
횽,
로또는 안 됐어.
근데 긁는 복권은 천 원씩 당첨돼서 진행 중이야.
일등 되면 바로 숲 아래 땅으로 이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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