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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_편지/모로코

모로코03_쉐프샤우엔

by 죠죠디 2024.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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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골목길에 구글지도가 현재위치를 잡지 못한다 해도 주소만 있다면 어떻게든 찾아가는 능력이 급상승했던 모로코였어.


캐리어를 끌었다면 몇 번이나 끓어올랐을 법 한 오르막과 돌길이었지만 배낭여행자는 전혀 타격이 없지.
 

약국표시가 초록색 초승달이라니 낭만초과

 
첫날은 체크인 후 쉬다 저녁 먹으러 식당에 다녀온 게 다였어. 

식당에서 먹는 따진은 진짜가 아니라는 그의 말이 꼬리표처럼 달라붙어있었지만 아는 요리는 따진뿐, 따진이 먹고 싶었어. 


맛있더라 따진.
 

밤에 현지여성이 혼자 걸어다니는가 아닌가의 여부로 도시의 안전함을 따져봤다.

 
밥 먹고 나오니 캄캄한 밤이 됐더라.

쫄보이자 안전주의인 나는 하지 말라는 건 안 하고, 조금이라도 치안이 불안한 곳에선 해 지기 전 무조건 귀가하는 사람인지라 모로코에서 '안전한 여행' 하라는 조언에 놀랬어. 그 어느 곳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인사라 덜컥 겁이 났던 거 같아.

혼자였다면 오늘처럼 외식 후 밤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일상적인 일로 채우지 못했을 거야. 

 


 

 
광장 근처 카페로 조식으로 시킨 민트티에 함박웃음 지은 아침이었어.


500cc 잔 안에 가득인 생민트잎은 한 10번은 우려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양이었어.
그때, 지금처럼 텀블러생활을 했다면 하루종일 텀블러에 담아 다니며 맛과 향에 취할 수 있었겠지? 그럼 민트향에 쉐프샤우엔을 각인시킬 수 있었을 텐데...


 

 
조식을 먹고 마을 골목을 돌며 식물도 사람도 생기 넘치는 시장을 구경했어.


자두 몇 알과 작은 멜론 하나를 사서 길 위에서 대충 씻어 먹으며 오전을 보냈어.

목적지 없이 온갖 곳을 싸돌아다니다 대충 현지인들 몇 앉아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탄단지 챙겨 메뉴를 골라 먹고 나와 그 사이 뜨거워진 태양을 피해 테라스 활짝 열어둔 카페로 들어가 뜨거운 커피를 시키고서야 걸음을 멈췄어.


 

 
스포츠 채널에 고정된 티비와 뜨문뜨문 테이블을 채운 모로코 아저씨들의 움직임과 카페 밖 그늘 하나 없이 햇빛으로 가득 차 있던 동그란 광장의 분위기가 선명해.


생소했던 분위기를 몇 번 살피다 테이블 위 뜨거운 커피가 올라오고는 멍 때렸나 봐.


나를 찾아올 이도, 일도 없는 당장, 햇빛만 머물고 있는 저 빛나는 광장을 가로질러 들어와 맞은편 의자에 자연스럽게 앉을 어떤 존재에 대한 망상을 떠올리다 갑자기 벼락처럼 떠오른 일에_



으악! 하고 소리를 질렀어.  

 

 
오늘이 귀국일이었어.



파리 인, 바르셀로나 아웃으로 산 항공권은 날짜 변경 서비스를 한 번 제공하는 티켓이었어.


30일을 이상을 잡고 온 여행이라 일수를 더 늘릴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여행 후반 모로코에 가기 위해 여행일을 늘이기로 하고 항공사에 문의해 본 결과 본귀국일 전날에 변경이 가능하다는 답을 들었어. (왜였을까?)  



그게 바로 어제였고, 소리를 질렀던 그때 내가 앉아있을 곳은 카페가 아니라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에 앉아 있을 시간이었던거지


ㅋㅋㅋ...
그냥 웃었어. 
이제 뭐 귀국편도 없어졌겠다 맘껏 여행하면 되잖아.
 

샌드위치도 맛있었는데 갓 튀긴 감자튀김 너무 맛있어서 주인아저씨한테 따봉했더니 한 접시 가득 담아 주셨쟈나.

 


 
쉐프샤우엔에 와서 다음날이었던가, 숙소 뒤편 광장에서 '대한민국'하고 적힌 모자를 쓴 모로칸을 만났었어.



아니 저 모자가 어떻게 여기에? 호기심 반, 반가움 반으로 쳐다보다 마주친 눈에 인사를 주고받는데,

'한국인이세요?'
하고 이질감 하나 없는 그의 목소리를 통해 나의 모국어가 들렸어. 



그 뒤, 한국말로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 시간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이국적인 장소에서 모국에 있는 듯 한 편안함을 느꼈어. 덧붙여, 떠나기 전 꼭! 차 한잔 마시자며 핸드폰 번호가 아닌 카카오톡 아이디를 묻는데... '한국인이세요?'는 내가 물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어.


 

 
다음날, 
그와 만나 곳곳의 설명을 들으며 그를 따라 카페로 가는 길.


지나치는 사람들마다 인사하는 진짜 토박이였더라.
그런 사람과 카페에 앉아 한국정치에서 페즈여행팁까지 한국어로 나누던 순간은 모로코 여행에서 가장 뭐랄까... 독특한 장면이었어.



그간 나에게 반갑게 다가왔던 외국인들은 대부분 한국아이돌을 좋아하는 학생들이었던터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 말하는 그가 굉장히 신기했어. 
그리고 제일 궁금했던 한국말을 왜 이렇게 잘해요? 에 대한 질문에 한국에서 유학했다는 대답을 하며 뒤에 덧붙인,



- 전 여자친구가 한국친구
 
!!!
역시 언어가 빨리 늘려면... 
 
 

 
완전히 해가 지고서야 그와 헤어졌어.

내일은 페즈로 이동해야하니 그와의 만남이 쉐프샤우엔에서의 마지막 일정이었지.


페즈는 골목이 복잡해 지도의 현재위치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 길 찾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어.



그게 걱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찾아갈 수 있을꺼야. 난. 
 

 
 
그럼 페즈에서 다시 편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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