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버스는 추웠어.
멀미를 피해 맨 앞자리에 앉았더니 문을 통해 들어오는 찬바람에 발이 시려 자다 깨기를 반복했어.
덕분에 가로등 하나 없는 암흑 그 자체 사막길 위에서 맘껏 별을 봤어.
볼 수록 더 많이 반짝이는 별은 어째선지 질리지도 않고 계속 반하고 반하길 반복했지. 지평선 바로부터 보이는 덕에 굳이 고개 아프게 올려볼 필요도 없이 옆으로만 돌리면 이름 모를 별들이 진짜 잔뜩 한가득이었어.
사람들 움직임에 바스락 거리던 소리마저 잠든 버스의 고요함이 그 시간, 장소와 딱이었다고 생각해.
이후, 아직 긴 새벽에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내려놓듯 잠들기를 포기했고, 많고 많은 별들마저 익숙해진 무렵 도로 왼쪽 가장자리 사막을 뛰는 여우를 봤어. 버스 타기 전 봤음 좋겠다고 말했는데 이걸 또 보네...?
(로또 일등 되고 싶다고 오랫동안 빌고 있어요.)
새벽 별 아래 사막을 활보하는 여우라니.
다음 생엔 사막여우로 태어나도 괜찮지 않을까 해.
밤, 새벽, 아침으로 변하는 시간의 색을 꼼꼼히 살펴보며 메르주가에 도착했어.
모두가 같은 곳에 내리는 게 아니고 숙소 위치에 다 다른 곳에 내려줬나 봐, 버스에서 내린 사람은 우리뿐이었던 걸로 기억하거든.
우릴 마중 나온 알리를 따라 몽롱함이 배가 되던 옅은 어둠을 달려 알리네로 가는 길, 잠든 사막도시의 황량함에 나는 되려 정신이 또렷해졌어.
'사막에 왔다.'
숙소에 도착해 우리 외에 체크인을 기다리는 다른 손님들과 식당에 둘러앉아 알리와 얘기를 했어.
사막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게 한다고 말하며 알리는 옆에 앉은 일본 여행객을 가리키며 일주일정도 생각하고 와서 벌써 1년 가까이 머물고 있다고 했지. 뭐 하고 지내냐 묻는 누군가의 질문에 딱히 없다며 머쓱 웃는 그로부터 묘한 불안을 느낀 건 이 여행 이후의 나를 투영했던 이유였나 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알리는 언젠가 사막의 삶을 정리하고 일본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는데, 이 말을 들은 한 명이 해맑게 그럼 이곳을 자기에게 물려달라 말했지.
알리는 한치에 고민도 없이 그러겠다고 했어. 다들 오? 하며 놀라는 중 알리가 다시 입을 열었어.
- 사막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여긴 모래뿐이야. 매일이 똑같아. 그럼에도 여기서 평생을 보내는걸 원한다면 약속해. 중간에 떠나지 않는다고 하면 너에게 물려줄게.
그 뒤, 둘이 약속을 마무리했던가? 기억나지 않지만,
웃지 않던 알리의 눈만은 선명해.
돌아갈 곳 있는 여행자의 입장으로썬 알지 못할 알리가 산 사막의 삶이라... 사막과 다를 바 없을 거라 혼자 예상해 봤어.
한바탕의 대화를 끝내고 가만히 앉아있던 내게 알리는 수영장을 보여주겠다고 했어.
그의 뒤를 따라간 곳에 밤새 바람에 날리는 모래가 들어갈까 쳐둔 천막이 보였지. 파란 천막을 걷어내니 그 보다 파란 물이 가득 찬 수영장이 나타났고 이 돌아버릴 이국적인 조합에 마음이 둥둥거렸지.
- 맘껏 수영해! 그리고 집처럼 편하게 지내줘. 그러면 내가 행복할 거야.
라는 그에게 나는 대답했어.
- 이미 그러고 있어.
수영장 물은 아침의 찬 온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터라 오래 수영하지 못했어.
그렇지만 말이야, 온통 모래빛 세상에 파란 한 점인 곳에서 수영했던 이 순간은 영원할 거야.
수영 후, 긴 이동의 피로까지 씻어내고 한숨 쉬다 일어났어.
동네 구경할 겸 나갔다가 머리 위에 있는 태양이 뜨거워 스카프로 얼굴을 두르고 걸어보는 마을은 처음 도착했을 때와 다를 바 없더라. 사람들 하나 없이 길거리엔 나와 그림자뿐이었지.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도착한 슈퍼에서 요거트 하나 사서 입에 물고 다시 돌아가는 길_어쩐지 어렸을 때 심부름 갔다가 거스름돈으로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돌아가는 기분이었어.
앞날 걱정 하나 없이 온전히 그 시간에 존재하던 평온함을 몇십 년 만에 이토록 먼 곳에서 다시 찾았네.
바람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는 사막의 첫날은 잔잔함 그 자체였어.
도착해서, 체크인을 기다리는 식당에서 알리가 오늘 사막투어 갈거냐 물어봤었어. 바람도 안 불고 오늘 날이 좋으니 별도 잘 보일 거라고 했지.
그치만, 바람이 사막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 알 리 없는 나는, 밤을 새듯 이동한 오늘의 피곤함에 내일로 미뤘지.
뜨문뜨문 그냥 피곤해도 이 날 갔으면 어땠을까 싶어.
핸드폰으로 남기지 못했지만,
저녁 먹고 숙소 밖 사막으로 조금 나가니 온통 별이었어.
밤, 별 그리고 나만 존재하는 세상이 여기 있더라.
시선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180도 어디를 봐도 별이 있었지. 머리 위 북두칠성, 그 뒤 목성, 저 나무 위 목성이 있다며 소리도 없이 옆으로 온 알리의 형 핫산이 별자리들을 알려주곤 은하수는 두세 시간 뒤에 별똥별은 간간히 볼 수 있다 말하곤 총총 사라졌어.
그의 말은 기도였을까?
은하수도 별똥별도 빠짐없이 내 눈으로 들어왔던 사막에서의 첫날 밤을... 나는 죽을 때까지 잊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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