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봐라 이햐...
사막투어 아침, 눈앞 풍경마저 의심케 한 흐린 하늘에 어제의 선명함은 신기루였나 싶었어.
내일 날씨가 좋을까? 그럼 내일 갈까? 어쩔까 하는데, 여기선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알리의 말에 낙타에 올랐어.
사막에선 알맞은 때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때에 맞춰 움직여야 했었던 거지.
생에 첫 낙타후기는 이래,
낙타가 일어서고, 앉을 때 무서웠습니다.
사막을 느릿느릿 걸으며 좌우로 흔들리기에 중심을 잡고 앉아있는 게 처음엔 힘들었지만 얼마 쫌 지나면 괜찮네? 하며 여유롭게 탔다고 생각했는데, 사막투어 끝내고 보니 은반지가 손잡이에 눌려 찌그러져 뭐 각진 타원형이 되어있었습니다.
- 이상 끗
아랍어로 '행복'이라는 'Said'를 따라 사막으로 가는 길,
점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모래뿐이게 되고 세상의 색도 단촐해졌는데 마음은 다채로워졌나 봐.
캠프에 도착해 각자의 텐트에 짐을 풀고 모여 밥을 먹었어.
잠시 쉬고 샌드보드를 타러 가야 한다는 사이드 말에 다시 나가 언덕을 올랐지. 모래 언덕 오르기 너무 힘들어서인지 다들 두 번 이상은 타질 않았어.
그리고 곧 해가 진다며 노을 사진 찍는 포인트로 우릴 데려간 사이드점점 거세지는 모래바람에 어떻게든 포인트를 찾으려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고개를 떨구고 돌아왔어.
- 바람 때문에 오늘은 노을 못 보겠다. 텐트로 돌아가자. 바람이 불면 사막에선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캠프엔 공용텐트가 있어서 이곳에 모여 밥도 먹고 그 뒤의 저녁시간도 보냈어.
사이드를 포함해 다른 베르베르인들의 연주와 춤도 보고 그들의 공연 후에 북 치는 걸 배웠지. 자랑해도 될까?
나 좀 잘 쳐서 같이 연주했다. ㅋㅋㅋ
바람이 불어 사막에서 노을은 못 봤지만 이 저녁시간의 흥겨움으로 아쉬움을 확 덮었다.
저녁식사 후 텐트로 돌아가는 내내 따갑게 살을 스치는 모래바람에 은하수도 못 보겠다 싶었어.
사막투어를 온 이유가 이거라 내일 날이 좋으면 돌아갔다 오후에 출발하는 사막투어를 다시 할까? 어쩔까 하다 얕은 잠에 들었지. 그러다 밖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텐트 밖으로 나갔더니 와... 온통 별뿐인 세상이 바로 여기 있더라.
이미 나온 멤버들은 잠들지 않고 있다 텐트천을 흔들던 바람이 멎어 혹시 하고 나왔다가 눈앞 풍경에 다들 깨워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며 고민했다며 나와서 다행이라 했지.
언제 바람이 불었을까 내내 모레와 함께던 공기는 고요함 그 자체로 모레 움직이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어.
밟힌다고 누구 하나 쉽게 죽지 않는 사막의 밤 한가운데 누워 세상에 마치 나와 별뿐인 우주에 있는 것 같던 이 순간.
... 모든 게 다 처음이 되는 것 같았어.
사막생활 체질인가.
꿀잠 자다 일출 보자는 사이드의 알람에 비몽사몽 텐트를 나와 마지막으로 사막을 올랐어. 오렌지, 황금 뭐 그 두 가지 색을 모두 합친 색으로 물든 세상을 보니 마음이 벅차오르더라.
사막... 진짜 다 줬다 나한테.
텐트로 돌아가 정리하고 다시 낙타에 올랐어.
나름 한 번 타봤다고 편하게 낙타를 타고 알리네로 돌아가는 사막 위,
어느 영화의 엔딩 같다고 생각했어.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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