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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_편지/모로코

모로코07_메르주가, 페즈 그리고 안녕

by 죠죠디 2024.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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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돌아온 아침, 낙타만 탔을 뿐인데 배가 고파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었어.


투어 멤버들과 사진을 주고받고 피곤함에 방으로 다들 흩어졌나 봐. 바로 침대 위로 쓰러지고 싶었지만 사막 한복판 모래바람에 치인 몸과 옷을 못 본 척할 수 없었지. 
 

분명 날이 좋았는데 또 바람이 불더라

 
사막에서는 한없이 게으름 피우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자유와 제한에 나도 시간도 풀어지는 것 같아. 

깨서 먹고 잠드는 하루, 그 사이사이 대부분의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막의 모래와 밤하늘 별을 보는 것뿐이었어. 그마저도 바람이 불지 않을 때만 가능했지.

여긴, 애초부터 선택사항이 없는 곳이니까.
 


그게 세상 편할 수가 없더라.
이런 단순함에 몇 일을 생각하고 왔다 몇 주, 몇 달을 있게 되나 봐. 
 

 
사막에서 돌아왔던 그 날도 어김없이 새벽에 밖으로 나가 은하수를 봤어.

불 하나 없는 사막의 새벽은 무섭지 않아.
서늘한 고요함에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져 이름 모를 별들과 오래도록 마주하고 싶어 되려 아침이 오지 않길 바랄정도였어. 


오늘이 지나면 나를 두고 180도로 휘감은 별 풍경을 언제 또 마주할 수 있을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해.


 


 
다음날, 체크아웃을 하고 오후까지 알리네에 있다 버스를 타고 다시 페즈로 돌아왔어.


어스름도 아닌 캄캄한 새벽 페즈역에 내렸지.
다행히 역은 열려있었고 그 안에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도 많아 그들과 함께 앉아 아침이 오길 기다렸어.
 

 
도시가 눈에 보일 정도로 환해져서야 페즈역을 나와 숙소가 있는 올드타운으로 걸었어.


아직 덜 깬 도시의 한산함이 지난번 한참 활동적인 페즈보다 나는 더 느낌이 좋았어.


 

 
이른 체크인을 해준 덕에 짐을 놓고 버스에서 못다 잔 잠을 좀 자고 나와 까르프로 가는 길에 쌍무지개가 뜬 거 있지.

생애 처음 봤던 선명한 쌍무지개에 서둘러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한참을 서서 봤나 봐.  근데, 현지인은 그냥 지나치는 걸 보면 여긴 쌍무지개가 자주 뜨는가 봉가?


 



까르푸에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어두워지기 전에 다시 숙소로 돌아갔어.


오늘이 모로코에서 마지막 밤이었지만 그간 여행의 긴장이 풀리면서 온 감기기운에 숙소 주인이 자꾸 숙박금액에 추가하려고 이거 저거 권하는 통에 빨리 아침이 왔으면 했어.


분명 어제까진 떠나고 싶지 않았는데 습자지 같은 내 마음은 이토록 빠르게 바뀐다.

 


 
 
페즈 말고 카사블랑카를 갔다면 더 머물고 싶었을까.


사막보다 더 흙빛으로 기억되는 페즈의 올드타운을 벗어나 공항버스가 서는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내내 이 도시에 남지 않는 마음에 발을 빨리 움직였나 봐. 버스를 타면 정말 떠나게 되는 것인데도 알림판 없는 정류소에서 나는 내내 버스가 언제 오는지만 생각했어.
 

 
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여행객의 안타까운 사연(친하게 지낸 모로코인으로부터 사기당해서 정류장 오기 직전에 법원까지 다녀온 썰이었다.)을 들으면서 내게 안전한 여행을 빌어준 그간의 모로코 사람들을 간신히 떠올렸고, 삭막하게 끝내고자 한 생각에 급히 따뜻함을 칠했나 봐.
 

 
그러고 보니 메르주가에 가기 전, 페즈에서 시장 구경하다 김치전이랑 비슷한 음식을 팔길래 사 먹었던 적이 있어.


사장이 내게 가격을 말하고 뭘 가지러 실내로 들어갔는데 단번에 못 알아들은 내가 나와 같이 기다리던 아주머니들에게 가지고 있던 동전을 전부 손바닥에 쏟고 물어봤지. 둘은 작은 동전 두 개를 손가락으로 골라 매대에 올려줬고 고맙다 인사한 후 나는 돌아서 앞으로 걸었어.


근데 얼마 안 가 등 뒤가 소란스러워 돌아보니 음식을 가지고 돌아온 사장이 내가 낸 동전을 들고 아주머니들과 다투고 계셨지.
상황을 보아하니 외국인인 내게 좀 더 받으려 했었나 봐.
 
어찌저찌 돈을 바로 냈으면 몰랐겠지만 운 좋게도 내겐 계산할 틈이 있었고, 아주머니들은 나를 도울 틈이 생겨 합이 잘 맞았지.

 

 

정말 시작부터 끝까지 모로코 현지인들의 도움과 기도로 가득 채운 여행이었다.

심지어 공항으로 가는 길 조금씩 떨어지던 빗방울에 우울해하지 말라고 어제 본 쌍무지개가 또 떠주기까지 한 거 있지?
 


있지 내가 첫 편지에 썼던 거 기억나?


모로코는 내게 다 줬어.’


 

 
이번 여행에서 여행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느꼈어. 


분명 나를 이끌었던 건 사하라 사막, 쉐프샤우엔의 사진이였지만 여행을 마치니 남는 건 풍경이 아니라 사람들이야.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모로코를 난 금방 떠났을지도 몰라. 떠나면서도 어느 아쉬움 하나 없이 오히려 간 것을 후회했겠지.
 
그러지 않을 수 있게 해 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남기며 나의 아름답고 신비한 모로코를 떠나. 또 편지할게.


그럼 이만!


PS_담엔 같이 가서 은하수를 보며 민트티를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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