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첫날 마주했던 그 양곤은 이 양곤이 아니었던가...
한 밤 중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니 이토록 선명한 색의 양곤이 있었더라.
녹슨 철 색의 오래된 풍경 속 생생하도록 쨍한 녹색에 양곤이 쿠바 아바나와 비슷하다 생각했어.
양곤에 머물 시간은 단 하루.
그러니 오늘 무척 많이 바삐 걸어 다닐 예정이지.
조식 먹자마자 밖으로 나온 이른 시간.
그간의 도시들에서 차가 없어 인도겸 자유롭게 다니던 도로를 꽉 채운 자동차들에 도시다! 여기가 수도임을 피부로 느꼈어.
거기다 뭔놈의 비둘기마저 양곤에 다 몰려있는지...
비둘기들도 도시 좋아하나?
숨 쉴 틈 없이 구경거리 넘쳐나는 양곤의 중심지에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999' 샨누들 식당.
샨누들에 미친 사람처럼 샨누들 맛집을 그렇게 찾아다녔는데 여기.
여기였어.
여기.
그 후, 곧바로 카페 가는 전 세계 통용 스케줄을 오늘도 따라.
그간 있던 도시,,,마을들과는 확실히 다른 현대식 분위기를 갖춘 양곤에서 갓 상경한 시골쥐가 된 나.
미얀마 밀크티(러펫예?)를 마시러 들어온 카페 메뉴판에 적힌 금액에 그간 머물던 마을들과 이곳은 전혀 다른 곳임을 깨달았어. 차 한 잔 값이 그간 우리 둘의 한 끼 값이랑 맞먹더라.
순간 젊은 아부지를 떠올렸어.
군 제대 후, 강원도 깡시골에서 친인척 아무도 없는 서울에 취직해 혼자 경복궁 근처에서 자취하던 시절, 월급 받아도 나갈 돈 다 제하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없어 매일 고추장에 밥만 비벼 먹었다고 말했던 그 시절이 혹시 내가 있는 여기, 지금이 아닐까? 했나 봐.
'걸어서 양곤속으로'라도 찍듯 온통 걸어 다닌 오늘이야. 이동수단을 타볼까 했지만, 숙소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 풀리지 않는 모든 곳의 러시아워에 생각을 접었지.
도시의 소음을 피해 들어간 대형 쇼핑몰에서 한국을 발견했네.
CGV와 식당에서 파는 떡볶이와 여러 분식들...
떡볶이 좋아하지도 않는데, 타지에 나왔더니 내 손이 먼저 떡볶이에 향하는 것도 보고 한 칸에 변기 두 개인... 가족용?? 절친용?? 화장실도 본 다채로운 볼거리의 쇼핑몰이었어.
그리고 연결된 다리로 건너 온 보족 마켓.
기념품 하나 무조건 사리라 하는 마음으로 갔지만 마감시간에 닿아 도착한 탓에 상점 반은 닫...혔지만 소비하려는 마음 아무도 막을 수 없지.
꼼꼼히 둘러보고 생각했던 가격을 훨 뛰어넘는 기념품을 각자 사 빠져나왔어.
양곤에서 가장 뿌듯했던 쇼핑타임.
기념품은 이따 보여줄게.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장소이 황금사원이라 불리느 쉐다곤파고다로 가는 길.
양곤의 퇴근길을 볼 수 있었어.
역에 내린 사람들이 다리 위로 올라오자마자 자리잡고 간식 먹던 노점상을 지나 고가 다리를 걷다 우연히 들어온 기차에 올라타려 뭉개지는 인파들에 서울의 출퇴근 지하철이 선명했지.
출퇴근길은 어디나 고되더라...
해가 점점 질수록 도착지에 점점 가까워졌어.
오렌지빛의 광선검처럼 사방으로 빛을 쏘아내며 지는 해에 한껏 눈을 찢부리며 쉐다곤으로 걷는 조용한 길.
이 길만이 유일하게 러시아워 없던 양곤의 길이었네.
밤이 되면 더욱 빛난다는 쉐다곤파고다를 마주하자니 그의 용모?에 압도당했어.
해가 지려면 좀 기다려야 해서 쉐다곤 주변 여럿 작은 파고다들 앞에 제각각의 소원과 기도를 가지고 몸을 낮춰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 주변을 위성처럼 돌며 나도 기도를 올릴 곳을 찾았어.
각 12간지의 작은 파고다들이 있는 곳이었는데 내 띠의 것을 찾아 물을 뿌리고 몇 번 돌며 기도를 올리면 된다는 친절한 어느 블로그를 재빨리 읽고 따랐지.
이런 기회에 기도를 올릴 땐 나는 언제나 같은 것을 말하는데, 그래서인지 잘 들어주는 것 같아.
어두워진 저녁, 황금색 쉐다곤파고다를 두 눈에 담고 나니 오늘 하루 정말 열심히 다녔다는 뿌듯함에 우리 자신에서 상을 줘야겠단 강한 의지가 생기더라. 오늘 저녁에 남은 돈 다 털어보자. 싶어 먹고 싶은 음식을 서로 말하다 나온 '일식'에 당장 출발. (아, 물론 걸어서)
숙소와 가까운 곳에 평점 좋은 일식집이 있어 쉐다곤에서 숙소까지 걸어왔단 말을 전합니다.
거의 3만보를 채운 걸음에 둘 다 다리가 말이 아니었지만 초밥, 튀김, 낙지볶음, 김치, 볶음우동... 신나게 시켜 먹으며 다리 아픔은 맛으로 가렸지. 아주 좋은 선택이었어.
이틀 치 일정을 하루에 몰아했더니 양곤에 대한 이미지는 2배속으로 뛰어넘기한 영상처럼 남아있어.
그렇지만, 아쉽지는 않아.
보통의 나라면 충분하다 생각하는 시간에는 행동하는데 우유부단해 빈손으로 이곳을 떠났을 테지만 이번엔 이렇게 예쁜 기념품을 갖고 떠날 수 있게 됐거든:)
계획 그 이상을 해낸 양곤에서의 하루를 끝으로 나는 다시 방콕으로 돌아가.
방콕에서 편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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