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레는 어쩜 날도 좋구요.
숙소는 조식 맛도 좋구요.
아침이지만 벌써 머리가 뜨거워지는 구름 한 점 없... 지 않은 하늘이 산뜻했어.
어제, 미리 예약한 보트투어 인솔자를 따라 선착장으로 갔지.
조심히 오르라는 말을 듣고 배에 오르자마자 삐끗하는 나 어떤데?
그 바람에 분명 발에 있던 쪼리가 종아리에 걸린 나는 또 어떤데...?
까진 정강이와 발등은 둘째고 당장 신고 돌아다닐 신발이 없어진 웃긴 처지였지만 오늘의 인솔자 자신의 슬리퍼를 벗어 나에게 줬어.
괜찮다고 거부하는 내게 그는 배 뒤편 여분의 슬리퍼를 들고 보여줬지.
나 같은 관광객이 더러 있었던 거겠지?
그들에게 마음을 다해 위로를 전하고, 덕분에 맘 편히 슬리퍼를 받아 신으며 호수 투어를 시작했어.
1. 전통 직조물 가게 > 보석가게
2. 식당 (우린 안 갔음)
3. 사원
30분씩 시간이 지날 때마다 가열차게 뜨거워지는 햇빛에 양산대신 들고 간 스카프를 머리에 둘렀음에도 견디기 힘든 온도에 우린 식사도 건너뛰었고, 마지막 포인트였던 사원도 대충 훑어보고 돌아왔어.
사실, 나는 배를 타고 호수를 달리는 걸 하고 싶었던 거라 가게들 구경이나 사원 구경은 관심이 없었던지라 아쉬움 없는 투어였지.
투어 중 식사를 건너뛰었기에 육지에서의 첫 스케줄은 단연 식사였어.
하지만, 이 뜨겁고 애매한 2시와 3시 사이에는 미얀마에도 시에스타가 있는지 우선, 거리에 사람 하나 없고 지도에 식당이라 표시된 가게마저 그냥 공간만 놓여있는 분위기에 무수히 발걸음을 옮기고서야 간신히 식당 한 곳에 들어가 식사를 할 수 있었어.
힘들게 들어간 식당에 맛 평가는 사치.
근데 여기서 밥 먹고 바로 디저트 가게 찾아 들어간 거 보면...
배가 안 찼거나, 맛이 안 찼거나...
이동수단을 이용했던 날은 그냥 가만히 앉아있었음에도 보통의 날 보다 체력이 더 빨리 떨어지는 건 왜일까.
한낮, 먹기만 하고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잔 후 저녁을 위해 나온... 먹는 게 중요한 나야.
낮과는 전혀 다른 풍경의 저녁.
현지인으로 가득 찬 식당에서 볶음밥을 포장해 들어와 신라면 뽀글이를 먹으며 내일 양곤행 버스를 예약했어.
인레에서 양곤까지는 12시간도 넘는 거리라서 하루치 숙박비를 벌 겸 오후 출발 이른 아침에 양곤에 도착하는 버스를 예약했지.
처음 도착지이자 미얀마의 마지막 여행도시의 양곤.
여기서 2박을 하고 다시 우린 태국으로 갈 거야.
인레는 오늘도 날이 좋아.
옥상에서 조식을 먹다 혹시나 싶어 숙소 주인에서 오후 출발 버스라서 늦은 체크아웃 가능한지 여쭤보니 그러라 하셔서 느긋하게 짐 정리하고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인레에서 남은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됐어.
매번 멀찍이 떨어진 식당만 다니다 안 가본 길을 걷던 중 외관이 맘에 들어 들어간 이 식당.
여기 아주 맛집...이었는데 왜 마지막날에 발견했지.
뒷 일을 생각하면 오늘의 가장 큰 수확은 이 식당과 종업원 모모였어.
모모는 한국어를 독학하는 중이었는데 억양이 그냥 한국사람이라 한국에서 왔냐고 물어봤네?
여튼, 그녀가 추천하는 메뉴에 감탄하며 식사를 마치고 이따 버스 타기 전에 다시 오겠다 약속하고 커피 마시러 갔지.
언제부터 나는 버스 시간을 잊고 있었던 걸까.
어제 예약해 놓고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정말 아~~ 무 생각도 없이 커피를 즐기다 여유롭게 아래의 사진을 찍었던 시간, 그 순간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가벼운 상태로의 카페 안이 아니라 배낭과 함께 양곤행 버스를 기다려야 할 버스사업소였지.
저어어언혀 생각지 않은 버스에 너무나 평화로웠던 나는 다시 모모가 있는 식당으로 가서 반갑게 모모와 인사하고 그녀의 다른 추천으로 시킨 음식인 국수 국물에 연달아 감탄하던 중 갑자기 번개라도 맞아 충격받은 사람처럼 떠오른 버스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악!! 하고 질렀어.
출발 10분 전,
머리가 새하얗고, 등골이 싸-했지만 몸이 먼저 움직였어.
내 비명에 다가온 모모에게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모모가 전화로 알아보겠다고 했고, 친구보다 발이 빠른 내가 먼저 숙소에 가서 배낭을 들고 오겠다고 했지.(뛰어서 숙소 왕복 15분 + 가방 무게 18kg = 이미 불가능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지만 상쇄할 수 있을 것 같은 내 실수)
그리고 결론,
체크 아웃 20분 만에 다시 체크인.
너덜너덜해져 돌아온 나를 본 숙소 주인아저씨의 웃음이 아직도 귀에 선해.
(버스는 당연히 출발했고 모모가 다음 날 첫차를 예약해 줌^^ = 우릴 위해 백방 알아봐 주고 도와준 모모에게 해줄 성의라곤 정말 성의 없게도 현금뿐이었던 게 너무 미안했고, 이날 이후 작은 선물을 들고 다녀야겠다고 다짐했음.)
짐 다 싸놓고, 알람도 꼼꼼히 맞춰 버스를 타러 갔어.
어제 버스를 탔다면 아마 앙곤 숙소에서 쉬고 있거나, 시내를 돌아다니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겠지만 난 인레, 이제 출발 예정이지.
이른 시간이지만 마중 나온 모모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거의 만차인 버스에 올라 양곤으로 출발.
모모와는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이게... 어려운 일이 될 줄은 이때는 꿈에도 몰랐어.
자다, 휴게소를 들르다를 반복하며 점심과 저녁시간을 지나 늦은 밤이 되어서야 창 밖으로 쉐다곤파고다가 보였어.
순간, 몇 년 전 로마시내로 가는 공항리무진에서 갑자기 나타난 개선문에 꿈처럼 황홀해했던 때가 겹쳐 지금 미얀마와 이탈리아 그 어딘가 있는 듯 한 기분에 멍해졌어.
입국부터 우당탕탕이던게 앙곤까지 이어졌다만 큰 일 하나 없이 그 과정들을 잘 다듬어준 이들 덕에 무사무탈히 오늘까지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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