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처음이 된 아침.
가족들과 같이 머물던 숙소 근처, 동네 사람들만 이용한다는 빵집이 있어.
몇 번이나 아침으로 사 먹어보려 했지만 늘 때를 놓치고 후쿠오카를 떠나기 직전에야 왔어.
아침이라 가게에 손님이 아무도 없으면 천천히 구경하기 좀 불편할거 같은데? 하며 걸어가는데 나보다 몇 미터 앞에서 걷던 아저씨도, 막 코너를 돌아 보이던 아주머니도 모두 이 빵집으로 들어가더니 내가 도착하기 전 식빵을 더한 여러 빵을 들고 다시 나왔지.
이런 동네 인기가게의 주인이 되고싶다.
문 밖에서부터 보인 다양한 빵과 가게 안을 가득 채운 따뜻하고 포근한 빵 냄새에 아직 그 어떤 빵도 먹어보지 않았지만 단골이 되고 싶어졌어. 하나하나 천천히 빵을 조심히 살펴보다 소금빵과 크림소보로빵을 골랐어.
둘 중 하나는 내 입맛에 맞겠지 뭐.
며칠 동안 우박과 비로 내내 흐렸던 하늘이 오랜만에 푸르른 오늘.
빵을 사들고 오호리공원에 갈까 하다 빵집에 그대로 주저앉았어. 빵 냄새를 포기할 수가 없더라.
텅 빈 가게 안에서 오롯이 내게 빵집 향이 베길 바라며 외투를 벗고 앉았어.
빵도 맛있었던 거 같은데 그보다 앉은 테이블에서 보이는 풍경에 나는 더 감탄했나 봐.
그저 햇빛이 보였을 뿐이었는데 말야.
가게 안 움직임의 소란을 들으며 느긋하게 아침을 보내고 조카가 부탁한 가챠 뽑으러 가.
나 가챠가게 1등 손님이더라?
있잖아? 그... 감이란 건 참 설명할 길이 없는데 그렇~게 잘 맞을 때가 있잖아?
유독 참 잘 맞는 때가... 오늘이었다는 걸 이때 바로 알아차렸다면 좋았을 거야.
여기, 같은 길 위에 가챠가게가 3개 있었어.
처음 들어간 가게를 샅샅이 살펴봤지만 조카가 원하는 가챠는 없었지. 가게를 나와 마주 보고 있는 두 번째 가게로 이동하며 설마 내가 안 들리는 저 가게는 아닐 거야(맞아, 거기야.). 하며, 마음 한 구석 찜찜한 느낌을 무시하고 더 크게 구역을 한 바퀴 돌며 다른 가게들을 찾아 들어가 온갖 기계들을 다 살펴봤어.
없어.
어디라도 한 군데 있을만한 상품이라 생각했는데 어쩜 없을 수 있을까.
결국 텐진 한 구역을 다 돌고, 또 돌고 나서야 눈감고 지나쳤던 그 가게에 조카가 원하는 가챠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돌아가는 길.
이미 나는 만보를 넘겼고, 더 이상의 이동은 다 귀찮아져 공원에 가려던 계획을 취소했어.
첫날 봤던 반짝이는 윤슬을 마주하며, 다시 찾은 고요에 커피로 축배를 들려했던 계획도 피곤함엔 못 이겼지.
긴 시간을 들여 찾은 가챠가게에 도착하자마자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기계로 돌진해 두 개를 뽑고 나왔어.
방황한 오전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죄 다 뽑아서 기계 안을 텅 비울 기세였는데 정작 하나 뽑고 났더니 됐다. 싶은 거 있지?
밥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오랜만의 따뜻한 날씨에 눈누난나 걸었어.
그리고 텐텐테이가 한 10m? 남았을까? 문이 열리며 직원아저씨가 나오더니 금방 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했지.
뭔가 잘못됐단 생각에 입 밖으로 엥? 하는 소리가 터져나갔어.
점심은 2시 30분까지고 지금은 막 1시를 넘겼는데? 설마...? 에이~ 아닐걸?(맞아 222) 하며,
도착한 문 앞에 걸려있던 '점심메뉴 매진'.
껄껄껄.
솔직히 진이 빠졌지만 뭐 어떻게 오늘은 이런 날인가 보다~ 하고 넘겨야지 뭐.
버스를 타고 하카타로 가려해.
매번 올 때마다 발품 팔며 도시를 익혀뒀더니 이와 같은 상황에 바로바로 떠오르는 차선책이 너무 뿌듯한 거 있지? 이래서 자꾸 후쿠오카를 찾게 되는 것 같아.
이번에 오면서 확실히 알게 된 이 도시에서의 내 행동반경과 그에 따라 익숙해진 길, 그리고 그 밖에 아직 낯선 곳들이 적절히 섞여 여전히 걸어 다니고 싶은 후쿠오카를 매 달마다 조금씩 지내보고 싶단 생각을 해. (우기제외)
중간 휴식 시간 없는 체인 카페로 가서 점심을 먹기로 정하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지점을 변경해 가던 길을 트는 내 모습에도 살짝 진절머... 아니, 헛웃음이 나긴 했지만 점심은 무사히 먹었다는 후기를 짧게 적어.
그리고 매번 노라네코때문에 가는 서점에서 스누피 책 한권과 노라네코 상품하나를 사서 나왔어.
비싼 것도, 대단한 물건도 아닌 그저 내가 좋아하는 작고 소소한 물건이었을 뿐인데 이 두 개로 오늘 하루가 보상받는 기분이 들면서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어.
진짜 이게 뭐라고 비죽비죽 웃음이 새어 나오게 만드는지.
좀 더 자주 소소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걸 내게 선물해 줘야겠단 생각이 들었어.
세끼 중 2끼를 밀가루로 채웠기에 저녁은 밥을 먹으려 했지만 알다시피 오늘 내 계획은 다 틀어졌기에 저녁메뉴는 우동이야.
우동을 안 좋아하는데 왜 찾아가서 먹었어? 할 텐데 여기 우동은 탄탄하고 쫄깃한 식감이 아니라 칼국수처럼 생겨서 후르륵 하고 넘어가는 부드러운 식감이라 그랬거든. 저녁장사가 5시 시작이라 거의 딱 맞춰 들어가니 다찌석이라 불리는 테이블석이 거의 만석이었어.
오늘 처음으로 뭔가 딱 맞게 찾아왔다 싶었읍니다.
우동집에서 숙소가 있는 나카스카와바타까지는 한 40분 정도 걸으면 되는 거리였는데 우동을 다 먹고 난 배부름에 20분을 더해 좀 더 걸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 즐겨보는 유튜버의 소개로 지도에 저장해 둔 마트랑 청과물가게가 딱 이 근처였지.
마트로 돌격.
여행에서 마트구경이 제일 재미있는 사람은 가는 길에 해가 져 어두컴컴해졌지만 너무 신이 났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마미 유키 본 것보다 여기 마트 다녀온 게 더 설레고 두근거렸다. 아직도 아마미 유키 보고 왔단 현실감을 못 찾아서 약간 싱숭생숭한 상태인데 제 현실감 좀 찾아주세요??)
그리고 마트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
또 캐널시티를 지나... 이렇게 사방팔방 캐널시티로 가는 길을 익히는 후쿠오카 여행이었다. 끗!
p.s_
아, 맞아. 내일 가는 구루메에 후기 좋은 온천이 있어 가보려 했더니 타월 빌리는데 300엔.
빌리는데 300엔은 용납이 안 돼서 서점 간 김에 여기 건물에서 봤었던 백엔샵을 찾다 결국 못 찾아서 포기했는데 숙소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 기다리다 본 건물 안내판 속 내가 찾던 백엔샵.
오늘이 아니라 내가 우당탕탕이다.
후쿠오카_진짜 최종의 날.
어제 눈앞에서 텐텐테이 마감을 경험했더니 어디 멀리 다녀오는 건 하지 않기로 했지.
체크아웃하고 간단한 짐만 들고 근처 도토루에서 커피를 마시며 못 다 쓴 일기와, 책을 읽으며 오픈시간을 기다렸어.
금요일 주중이라 나 혼자 여행자로서 여유로움을 독점할 줄 알았더니 내가 오기 전부터 머물고, 들어와 느긋한 오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 도토루였지. 다들 무슨 일들을 하시길래 이토록 여유로우십니까?
부러워서 그래요.
점심오픈 10분 전 카페를 나왔어.
웨이팅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며 걷는데 텅 빈 가게 앞에 뭐지? 오늘 쉬는 날인가? 하는 불안에 발걸음이 빨라졌나 봐.
여타 다른 안내문이 없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미 장사를 시작했는지 내부엔 식사를 기다리는 손님들과 먼저 먹고 있는 손님들로 가득이었다.
한 자리 비어있던 테이블석으로 안내받아 텐텐테이에 오게 한 메뉴였던 치킨난반 대신 치즈함박이 맛있다는 후기가 떠올라 치즈함박을 주문했어.
왜 그랬지? 하...
횽, 왜 자꾸 잊는지 모르겠어. 뭐든 내가 좋아하는 걸 우선으로 해서 골라야 하는걸 말야.
탕수육도 찍먹에, 돈까스도 소금 찍어 먹으면서 소스에 흠뻑 적셔 나오는 함박을 시키다니? 묵직하게 담겨 나온 식사쟁반을 받아 들고 아차 싶었다. 그나저나 여기 밥이 정말 맛있었어. 그래서 다음번엔 그냥 가라아게 셋트를 먹으러 가보게.
텐텐테이에서 한 식사 하나로 오늘 식사를 끝냈다.
하루 종일 배가 어찌나 든든하던지 이후, 라떼로 소문난 카페까지 찾아가서 커피대신 원두만 사서 나왔어.
바로 구루메로 가야 해서 웬만하면 마셔보려 했는데 후쿠오카에서 맡아본 원두 냄새 중 최고로 향긋한 향에도 도저히 라떼를 먹을 수 없는 상태였지. 그래도 오늘 후쿠오카에서 하려던 거 남김없이 다 해서 후회 없이 떠나.
다시 따뜻해진 날씨와 든든함 이유 모를 즐거움에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려던 계획을 바꿔 텐진까지 걸어갔어. 비록, 타일바닥에 캐리어가 구르는 소리가 거슬려 반쯤은 들거나 소리가 덜나는 바닥을 찾아다니느라 약간 피곤하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후쿠오카를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후쿠오카에서 구루메까지는 많이 걸리진 않는데 특급행을 타는 바람에 시간이 줄어 금방 도착할 수 있었어.
처음인 이동이라 조금 걱정했는데 역시 막상 해보니 별거 아니더라.
참 꾸준히도 그걸 알면서 매번 처음인 것에 왜 이렇게 걱정을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
무사히 구루메에 도착했어.
사람 많은 후쿠오카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곳인데 역에 도착하자마자 아, 뭔가 2000년대 구로역 같은데? 하는 낯익은 느낌과 함께 관광지를 벗어난 한가로움에 구루메가 슬쩍 맘에 들었어.
당장 내일 새벽 떠나야 해서 구루메에서 뭘 특별히 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우선 숙소에 짐 놓고 돌아다녀보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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