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니 내 다리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붉게 올라온 반점무리들이 있었어.
딱히 증상이 없어 나는 일어나서도 모르고 있다 친구가 보고 알려줬지. 둘이 더 올라온 곳은 없는지 살펴보다 어쩌다?를 생각했어.
나만 증상이 있어 음식문젠 아니고 그럼 알러진가? 했는데 너무 특정부위에 몰려있어서 그럼 침대에 벌레가 있나? 하는 말이 끝나자마자 둘이 이불, 베개 들고 테라스에서 팡팡 털고 널었어.
가자 병원으로! 나도 보험비 청구해보자.
찾아 본 병원은 BTS '통로' 쪽에 있는 '싸미티웻병원'으로 종합병원이야.
여길 고른 건 순전히 구글지도에 후기와 별점이 많고, 높았기 때문이었지. 구글지도 없었으면 여행 어떻게 했을랑가 모르겠네.
별 일 아니라는 건 알지만 외국에서 병원을 가고 있자니 기분이 싱숭생숭, 첫 진료라 이거 저거 작성하고 기다리고 등등... 앞으로의 시간이 눈앞에 그려져 벌써 피곤했지.
병원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진료 보러 왔다. 는 말을 시작으로 쉽게 진료절차를 밟는데 한국어 통역 필요하냐는 물음에 오? 여기 큰 병원이구나~ 하면서 이상하게 걱정을 덜었나 봐.(무료 서비슨 줄 알았지만 아니었구요)
본관에서 이어지는 별관 피부과로 가서 세부적인 개인정보를 작성하고 잠깐 기다렸다 진료 보러 들어갔어.
환부에 약간의 열감과 간지러움이 있다 말하니 의사가 피부병에 대한 정확한 원인은 사실 알기 힘들어서 뭣 때문이다!라고 확실하게 말하긴 어려운데 자고 일어나니 증상이 있었다고 하니 자면서 개미같이 작은 벌레에 물린 것 같다고 했어. 그리고 돌아가서 이불빨래 하고 약 처방해 줄 테니 하루에 2번 잘 바르라고 했지. (내 진료엔 통역서비스는 딱히 필요하지 않았어.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의사가 쉬운 영어로 설명해 줬거든.)
그리고 1905밧 청구 됐습니다.
한화로 7-8만 원 정도? 생각보다 적게 나와서 놀랬잖아.
병원 다녀오느라 당떨어져 카페에 가서 커피와 머핀을 시켜 앉았지.
머핀은 전날 케이크 먹고 싶었는데 못 먹었던 나를 위해 친구가 시켜준 건데 맛있었지만 달아서 가게를 나오기 직전에야 간신히 다 먹을 수 있었어.
아마 먹고 싶은 때 맞춰 왔다면 간단하게 하나 다 먹었을 텐데 때를 놓치니 이 작은 것도 힘들어지네.
저녁때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와 약을 바르니 색도 진해지고 부어올랐던 게 가라앉더라.
잘 먹고 잘 쉬라던 의사말을 들어 오늘은 일찍 자보려고.
병원 다녀온 후유증이랄까?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야.
그래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사둔 간식으로 하루를 때우고 침대, 식탁의자를 번갈아 가며 게으름을 피웠더니 금방 저녁이었어.
요즘 방콕 해지는 하늘색이 너무 예뻐.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색만 봐도 집 나간 평온이 다시 돌아오는 느낌이야.
첫날, 숙소 와서 노을 지는 거 보고 사진이랑 영상으로 열과 성을 다해 찍고 자기 전 돌려보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지 싶더라.
카메라 렌즈가 아무리 좋아도 눈으로 보느니만 못 하잖아.
방콕을 떠나기로 했어.
2주 넘게 있었더니 이러다 정말 못 떠날 거 같았거든.
어딜 가 볼까? 하다 둘 다 태국에서 휴양지는 가보지 못했다는 공통점에 바다를 보러 가자! 해서 끄라비행 비행기표를 끊었어.
물론, 다시 방콕으로 돌아올 거야.
다시 돌아와도 여기 같은 곳에 머물고 싶었는데 그때는 이미 예약이 차 있더라고.
아쉬워서 아낌없이 다 보고 가기로 했지.
매번 역으로 가는 길만 이용했어서 오늘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그 반대편 길을 걷기로 했어.
콘도건물들이 즐비한 길을 벗어나니 색 바랜 낮은 건물들과 노스탤지어에 빠지게 하는 동네풍경에 그 시절 늘 방방 뛰어다니던 어린 내가 된 듯 마음이 두근거렸어. 여길 왜 이제서야 오게 된 걸까. 하는 아쉬움에 이 길이 아주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아쉬움 뚝뚝 남기며 걷던 길이 끝나면 그 건너편에 근처 동네 사람들을 위한 재래시장이 있어.
시장을 이용하던 아니던 이 근처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보통 때 같으면 기 빨려서 빨리 지나가고 싶어 졌을 텐데 오늘은 생기 넘치는 게 보기 좋다 느껴졌지.
시장엔 딱 봐도 상태 좋은 물건들이 보기 좋게 쌓여있는데 그걸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어.
근데 가격이 진짜...
망고 키로에 50바트.
수박 한 통에 30바트.
어디든 시장이 제일이다. 제일이야.
시장을 구경하고 다시 숙소로 가는 길 가구쇼룸과 카페가 합쳐진 건물 외관이 이뻐 홀린 듯 들어가 커피를 마셨어.
높은 층고에 넓은 공간이라 답답하지 않아 편히 쉬다 나왔지.
방콕에는 딱히 맛없는 곳이 없다는 생각이 자리하면서 곧잘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하게 됐어.
숙소로 가는 길 생각보다 늦어진 시간에 가서 먹는 것보다 먹고 들어가는 게 좋겠다며 열린 식당이면 가서 밥 먹자고 얘기하는데 카페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가게가 있더라구.
밥, 계란프라이, 고기조림? 이렇게 한 접시에 나왔는데 이게 맛없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숙소건물엔 헬스장과 수영장이 있는데 단 한 번도 수영장을 이용하지 않았잖아.
분명 예약할 땐 매일 할 것 같았는데 막상 현실로 오니 젖은 몸을 처리하는 게 귀찮아 가지 않게 되더라. 밥 먹고 돌아와 늦은 밤에 갔더니 사람 하나 없어 전세 낸 것 같이 편히 수영하고 올라왔어.
직접 하면 생각과 다른데 말야.
오늘 이곳에서 마지막 날이야.
오랜만에 조식을 챙겨 먹고 끄라비 가기 전 간단하게 쇼핑 좀 할까 싶어 시암으로 가려고.
준비하는데 맑던 날씨가 점점 어두워지더니 저 멀리부터 심상찮은 구름이 보이기 시작했어.
한바탕 스콜이 쏟아질 예정인가 봐.
무섭게 쏟아지던 스콜이 멈추고 나서 나와 숙소에서 제공하는 툭툭서비스를 이용해 편히 역으로 갔지.
천국 같은 지상철을 타고 도심 한복판으로 가면 숙소가 있는 역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데 분위기가 확 달라져 외국인인 난 또 여기에 외국인이 된 기분이 들어.
좋은 쪽으로 참 이상한 곳이야 방콕.
쇼핑몰 도착해 kfc 가서 치밥으로 요기하고 친구는 가방을 나는 친구 생일 선물을 사고 못 산 kito 샌들 대신 빅 c에서 kito 슬리퍼를 구입했어.
슬리퍼 말이야, 생긴 게 너무 투박해서 살 땐 별로였는데 한 번 신어보니 이 슬리퍼를 대체할 수 있는 브랜드는 없겠더라.
여튼 쇼핑 다 하고 내일은 아침 일찍 움직여야 해서 더 돌아다니지 않고 귀가했어.
자, 내일부턴 끄라비야.
거기 노을맛집이라던데 예쁜 노을 보고 편지할게!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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