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생생해진 거 있지?
바간을 떠나 만달레이로 가던 날이. 초록에서 점점 멀어지는 이미지가 나를 덮쳐 어떤 기운을 빼 나가는 느낌이었어.
이상하지.
바간은 내게 수식어를 붙여 기억할 만한 장소가 아닌데...
오후, 다시 바이크를 빌려 초록을 달려 도착한 곳은 '쉐산도 사원'이었어.
여기서 보는 일출, 일몰이 그렇게 멋지다고 했지.
사원 제일 높은 돔은 지난 지진으로 무너지는 바람에 한창 수리 중이었어. 다시, 간다면 그땐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꽤나 가파른 계단을 보고 현기증이 살짝 일어 바닥으로 떨군 시선에 온갖 신발이 걸렸지.
맞아, 사원에 오를 땐 맨발로 가야 한데!
3층? 4층 올라 본 풍경이 꽤나 청명해 오늘의 일몰을 기대했다.
이 기대는 나 혼자만 하는게 아니라 아마 여기 있는 모두가 하고 있었을 거야.
기대하는 사람이 부족했을까?
해가 낮아질수록 어디서부터 나타나는지 모를 구름이 하늘을 점차 덮기 시작하는데 머무는 내내 일출과 일몰에 맞춰서 이러니 구름... 구름...
구름!!!!
대충 어두운 파란 하늘에 오렌지빛 석양색을 본 걸로 타협하고 서둘러 사원을 내려왔어.
갈 곳이 있었거든.
목적지는 뉴 바간.
가로등 하나 없는 바간의 도로는 밤이 되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어둠을 달려야 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최대한 일찍 출발한 거였는데 목적지에 도착하니 이미 캄캄해져 버렸지.
그래서, 목적지가 어디냐구?
여기 파이브스타.
치킨집이야.
오늘 무슨 날인가... 나 말고 치킨 먹고 싶은 사람 바글바글한 파이브스타집 앞에서 40분을 기다려 치킨을 받아 들고 다시 올드바간으로 가는 길 치킨냄새 하나로 어둠의 공포를 이겨냈네.
다음날,
앞 편지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매 새벽 4시마다 일어났다는 얘기를 안 했더라?
미얀마에 오게 한 요인 중 하나가 바간의 일출 사진이었어.
쉐산도파고다에서 찍은 일출사진이었는데 땅에 옅게 깔린 새벽안개가 작은 사원들 주변에 깔려있고 그 위로 수십 개의 열기구들이 떠 있는 사진이었지. 그 풍경을 보려고 온 거였기 때문에 매 새벽마다 일어나 커튼을 열고 날씨를 확인했었어.
비가 오고 있거나, 흐리거나, 알람을 끄고 그냥 잠들어버린 후의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다면 무조건 나간다는 다짐을 한 날이었지.
준비시간이 길었을까?
하늘 점점 밝아지는 게 선명해 목적지를 바꿔 쉐산도파고다에서 대충 근처 아무 파고다로 가는 길.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아침을 맞이한 뱀, 전갈 그리고 개구리까지... 나만 보기 너무 아까워 뒷자리 친구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지만 곤충러버가 아니니 급히 엑셀만 당겨봤어.
최종 목적지로 가는 길 이미 해는 완전히 떠올랐어.
날이 좋겠더라 오늘.
이름 모를 작은 파고다에 친구와 둘이서 각자 자리를 잡고 이미 떠오른 해를 마주하며 맞이한 아침.
비록 이곳으로 이끈 풍경은 못 보고 떠나지만 그래서 다음에 다시 와 보겠다는 기약을 하고 상쾌한 공기를 가로질러 다시 숙소로 돌아왔어.
매번 느즈막히 동네를 나오느라 동네의 아침풍경은 오늘 처음이었는데, 진짜 너어무 예쁘더라.
햇빛이 나뭇잎 사이를 통과해 땅에 맺혀 있는 반짝이는 모습에 한낮 지루한 더위에 지쳐 보던 그 풍경과는 전혀 달랐지.
그 풍경에 혼자 마음이 붕붕 떠 걷는 길에 나 또 망고 하나 주었네?
기분 째진다.
덜 익은 망고는 창틀에 올려 창밖에 노랗게 익어가는 망고를 보게 냅뒀어.
너도 저렇게 빨리 익어야 한단다.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나 첫 번째 바이크를 빌리며 맡긴 세탁물을 찾으러 가는 길에 내일 만달레이로 가는 버스티켓을 샀어.
점심은 뭔가 굉장히 해변가에 있을법한 인테리어를 한 가게에서 먹었는데 해산물 일절 없는 메뉴로 골라 싹싹 먹고 나왔지.
동물들은 참 똑똑해.
한참 날 뜨거운 시간 거리 개들은 나무 아래 땅을 파고 누워 낮잠을 자더라.
가만 지켜보다 어쩌면 반련 동물들은 자기들이 같이 살아준다는 생각으로 함께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어. 이렇게 똑똑한 애들인데 그럴 수 있잖아...?
개들보고 감탄하고 코너를 돌면 바로 호텔인데 그 옆에서 동네분들이 또 생전 처음 보는 과일을 따고 계시지 뭐야.
다가가 그게 뭐냐 물었는데 분명 대답해 주셨거든? 미얀마어로... 여튼, 오 먹는 거냐 손짓으로 다시 묻는 내게 직접 칼로 과육 빼주시며 주시는데 나 진짜 째주띤바데예요.
덕분에 한낮의 온도만큼 뜨거운 마음으로 들어간 숙소에서 잘 쉬다 나왔어.
마지막 날이니 파고다 한 곳을 더 다녀오기 위해 다시 호텔 밖으로 나온 나를 반긴건 스쿠터의 녹아내린 두 바퀴. 아니... 이 정도로 뜨거웠다고?
이거 조졌네..
이야 이거 뭐 보험도 없고 큰일이다 싶어 호텔 사장님한테 먼저 어떡하냐고 물으니 별 일 아니라고 괜찮을 거라는 사장님.
사장님 말 믿고 숙소 근처에 있는 가게로 바이크 끌고 가 렌탈 사장님 보자마자 잔뜩 억울한 표정을 하고 이거 어떻게요? 했더니 사장님 왈,
'아이고! 전화하지 뭘 끌고 왔어!'
사장님, 우리가 대화한 건 이번이 두 번째지만 조...조아해요.
아예 새 바이크로 바꿔 기분 좋게 파고다를 다녀왔어.
비록 파고다 옥상에 오르니 태풍이 불 것 같은 하늘로 바뀌고, 바람에 몸이 휘청거리며 마지막 파고다를 서둘러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마음 따뜻한 올드바간 주민들 덕에 짧은 바간생활이 너무 좋았다.
바간... 적다 보니 지금 다시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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