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생활권이 된 방콕에서의 하루들은 여행자의 것이라기 보단 그냥 나의 것이었어.
익숙함이 가득한 이곳에서 머무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던 시기는 일찍이 지나왔기에 이제는 확실히 떠날 때가 왔다 생각했지.
인도에 가기로 했어.
꼬박 10년만에 다시 가.
익숙함을 져버리고 다시 적응해야 하는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스릴과, 피곤함이 먼저 그려지는 바람에 다시 소중해진 방콕에서의 하루들은 달라지지 않았어.
가는 식당도, 식당에 가서 시키는 메뉴도 말야.
대신, 숙소 위치가 방콕에서 처음인 동네에 위치해서 다니는 길만 바뀌었을 뿐 생활 자체는 여전해.
(이 동네 너무 맘에 들어. 근처에 재래시장이 있어서 과일도 엄청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고 조금만 걸어가면 테스코도 있어서 살기 아주 좋겠더라)
먹고 싶은 열대과일을 잔뜩 사서 먹고, 앞으로의 여행에 꼭 필요할 것 같은 신발도 구매했어.
왜냐면 방콕만큼 쇼핑하기 좋은 나라에 언제 갈지 모르거든.
매번 아속이나 수쿰빗으로 돌아다니다 하루는, 숙소 주변만 돌아다녔어.
확실히 나는 이런 곳들이 좋아.
번잡하지 않고, 위압감 느끼지 않는 평범함이 아기자기하게 있는 동네의 풍경 말이야.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안전한 집'을 떠올리라고 하면 어렸을 때 살던 집을 떠올린데. 근데 그게 맞는 거 같은 게 난 이렇게 나 어릴 적 살던 동네와 비슷한 민가를 걸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안정감에 유~해지면서 기분이 좋아지거든.
막 목욕을 끝내고 나와 시원한 바람을 맞는 것처럼 말야.
숙소뷰는 방콕의 단계별 빈부풍경이랄까.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각 나라의 속사정들에 고이고이 접어둔 종이학 같은 나라별 환상들이 바사삭 깨지고, 찢어질 때의 충격이 있지 않아? 내겐 인도가 그랬다는 걸 이미 알겠지만... 류시화의 책을 읽고 인도행(기피해야 할 인도행 결정 1순위라고 생각함)을 결정한 10년 전 내게 지금의 내가 한 마디 해줄 수 있다면...
'가서 와장창 깨지도 돌아오렴!'이라고 말할 거야.
아, 물론 친구가 간다고 하면 조용히 불러 '한번 더 생각해 보렴'이라고 타이를 수도...?
타인의 경험을 내 것이라 착각하지 말 것.
그래서 난 자기계발은 안 읽어.
근데, 아무리 다짐해도 '기대'는 져버릴 수 없는 건 왤까.
산티아고 길의 한 곳인 철의 십자가의 돌무덤 위에 앉아 모든 기대를 놓고 간다며 메모장에 꼭꼭 눌러 적으며 다짐했는데, 다짐이 무색하게 나는 여전히 기대하고 있어.
방콕을 떠나는 날.
집에 택배를 보냈어.
늦은 어버이날 선물, 미얀마에서 산 기념품과 입지 않은 옷가지들을 박스에 채웠지. 한결 가벼워진 가방에 새로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어. 조금 들떴나 봐.
방콕에서의 마지막 식사로는 치킨. 치킨. 치킨.
밤비행기인 델리행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왔어.
우리와 같이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 사이 동양인은 보이지 않아.
이쯤 되니까 왜 내가 이동수단을 타면 나와 같은 외국인은 별로 없고, 현지인들이 대다수인지... 이거 우연인 건가?
비행기에 올라 한숨 자고 일어나면 델리일 거야.
깨지 않고 쭉- 자고 일어나길 바라며 이만 편지 줄일게.
'여행_편지 > 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Dear.22_방콕일상(차이나타운, 아유타야) (2) | 2024.12.03 |
---|---|
방콕22_섞이고 섞이는 에카마이 생활 (1) | 2024.11.27 |
Dear.21_다시 돌아온 방콕 (1) | 2024.11.25 |
Dear.20_라일레이 비치 그리고 해산물파티 (3) | 2024.11.23 |
Dear.19_아오낭에서 크라비로 이동 (1) | 2024.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