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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_편지/일본

25_주고쿠_히로시마02-1

by 죠죠디 2025.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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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꼬박 21시간을 깨어 있었는데 피곤함의 한도를 넘기니 밤이 아니라 자정가까이에 잠들었나 봐.
근데 눈 뜨니 6시.


믿을 수 없는 시간에 마른세수를 하며 오늘 하루 시작.

 

호텔 예약하기 전 꼼꼼히 살펴본 후기에 조식칭찬이 자자해 슬리퍼 끌고 내려간 식당풍경에 아 진짜구나! 했다.
요즘 일본 쌀 값이 고공행진이라 밥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빵에 밥에 10가지는 족히 되는 반찬에 내가 낸 숙박비가 되려 너무 적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어.

 

 

후식으로 수제커피젤리까지 든든하게 먹고 방으로 올라가기 전, 들고 온 돼지코가 불량이라 혹시 멀티탭을 빌릴 수 있을까? 데스크에 문의했는데 생각도 안 한 3pin용을 빌려줘서 절 할 뻔... 세상에 조식부터 서비스에 감동이 넘친다.

 


 

오늘 날씨는 하루 종일 청명, 비 오고 추웠던 어제는 가라.

옷차림도 가을에서 봄으로 급커브 틀어 어제 입었던 점퍼는 냅두고 반팔에 긴팔 남방을 걸쳐 나왔어.
숙소를 막 나왔을 땐 쌀쌀한가 싶었는데 걷다 보니 해가 뽝! 온도가 뿅! 하고 올라 곧 셔츠를 벗고 반팔차림으로 다니게 됐지.

 

#히로시마성

 

아침도 든든히 먹었겠다 원폭돔 근처에 있는 공원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아침 커피를 마시러 가는데, 확실히 월요일 출근시간이라 어제와 다르게 사람 많은 길 위, 입장 다른 나의 여유는 여행 중에나 갖는 특권인지라 걸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어.

 

신데렐라 마법처럼 내일이면 끝날테니 꽉 잡고 누려보자고.

 

 

 


어제 역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이용했던 히로시마 역을 이용하는 루트는 질려버렸기에 새로운 길로 건너가는 중 제일 먼저 히로시마 성을 지났고, 빛이 예쁘게 내리는 지하도로를 빠져나가는 길.

 

 

들고 간 필름 카메라에 필름을 갈기 위해 잠시 길 가장자리에 멈췄어.
카메라가 필름을 못 감아 몇 번 시도하다 보니 내 쪽으로 자전거 끌고 얕은 오르막을 걸어오시는 할머니에 반대편 가장자리로 옮겨 다시 시도하는데 나를 지나쳐 몇 발자국 더 걸어가신 할머니가 걸음을 멈추시고 나를 보며,

'내가 이쪽으로 계속 걸어가게 피해 준 거지? 고마워'

하시고는 자전거에 올라타셨어.

 

 

마음이 차오른다는 게 이런 기분이었지.
별 거 아닌 행동이었던 내 움직임을 흘려보내지 않고 콕 잡고 표현해 주신 할머니의 '고맙다'는 말에 세상이 환해지더라.

 

할머니 덕에 이제 시작한 하루가 이미 완벽해졌어.
그리고 내 장래희망엔 아무리 사소한 고마움이라도 표현하는 사람이 추가됐지.

 

 

구름 위를 걷듯 둥둥 걸어 도착한 스타벅스(트레블고 체크카드_5달러 이상 사용 시 페이백)는 통유리였는데 정오가 되기 전 이미 꽉 차게 들어오는 햇빛에 실내가 뜨거웠지.


할인이고 자시고 앉아있을 수 없었기에 스타벅스 앞, 공공 테이블에 앉아 잠시 쉬었어.
호텔을 나와서부터 외부 소음은 차단하려 귀에 단단히 꽂아 놓은 이어폰을 여기서 뺏던 건 이곳엔 도시소리와 그 사이사이 새들의 울음소리뿐이었거든. 매번 넘쳐나서 안으로는 담을 수 없는 사람들의 말소리들은 보이지도 않았던 이 시간이 히로시마에 혼자 있던 중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었어.

 

아, 지금 히로시마 너무 좋았다.

 

 

벗어둔 셔츠를 다시 입을 수 있을 만큼 땀을 식히고 나니 머리 위, 해가 떠있는 한참 뜨거운 시간.
이 시간을 걷는 건 쫌 힘들지만 그 덕에 텅 빈 듯한 도시를 홀로 걸어 다니는 호사를 누릴 수 있으니 언제고 이 시간엔 히로시마에서 걷기를 선택할 거야.

 

 

그래서 땀 삐질 흘리며 간 곳은 드럭스토어.
gln 할인받아서 마스크팩 2개랑 물, 슈크림빵 사서 나와 가게 앞에서 바로 슈크림빵을 뜯어 세 입에 사라지는 마법을 부려보고 다시 걸어.

 

슬라이스 모찌 마지막날 사려 했지만 동네 마트엔 없고... 쇼핑은 역시 보일 때 사야한다.

 

중심부에서 몇 블록 떨어진 길을 걷고 있자면 횡단보도에서나 사람을 만나게 할 정도로 한산한 이곳은 내게 딱이었어.
후쿠오카는 어딜 가나 사람이 많아 사람 없는 곳을 일부러 찾아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돌아다녔는데 히로시마는 그럴 필요가 없어.

 

어제 비를 맞아 그런지 나무들마저 더욱 짙고, 건강해 그 아래 있자면 나마저 싱그러워져 짧은 일정으로 온 걸 아쉬워하게 만들었어.
뭐, 그렇지만 또 오면 되니까.

 

 

근데 말야? 걷지 않고, 바이크를 타고 일주해 보고 싶단 생각을 했어.
비단 히로시마 뿐 아니라 일본을.

현실은 어찌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상상으론 굉장히 낭만적인 영상으로 머릿속에 재생되는데 더 나이 들기 전에 할 일에 적어놔야지. 횽아 스쿠터 안 쓰는 날 언제야?ㅋㅋ

 

 

목말라 죽기 일보직전에 들어온 스타벅스.
어떤 원두를 살까 고민하다 먼저 든 원두 대신 후자로 선택한 100g짜리와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자리를 잡았어.

 

빠르게 나온 커피를 마시며 일기를 쓰는데 아까 계산할 때 원두를 신중히 고르시네요~ 하고 말을 걸어줬던 점원이 내게 다가와 종이봉투를 하나 건네어서 띠옹? 한 얼굴로 보는데 아까 고민하고 사지 않았던 원두를 담아서 건네주셨던 거야. 


오늘 세상이 나 기분 좋으라고 온 힘을 다 하는 날인가?
분명 뭐라 덧붙여 말씀하셨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을 받았더니 하나도 기억 안 나고 그냥 화악하고 타오르듯 감정이 머리끝까지 치솟아 웃으면서 고맙다고만 인사를 했나 봐. 이쯤 되니 히로시마가 내 운명의 도시인가 싶고... 여기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까지 생각했네.

 

 

스타벅스를 나올 때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손님들이 밀려드는 시간대여서 정신이 없으셔 그냥 조용히 나왔는데 아무래도 인사하러 다시 가야 할 거 같아. 여행일 수가 아니라 사람에게 갖는 이런 아쉬움은 여행에 처음인지라 좀 신선하네?

 

온종일 걸어 다니며 익혀둔 길에 점심은 근처에 있던 어제 북오프 가면서 지나갔던 도쿄아부라소바?로 선택.
티켓 뽑는데 버벅임이 있지만 저는 해냈고요.(점심시간 지난 때라 사람 없었기에 망정) 크게 기대하지 않고 먹어서 그런지 그냥 그랬지. 이상하게 나는 일본라면엔 흥미가 없어. 근데 또 딱히 막 엄청 먹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라 식사에 대한 기대가 낮아 다행이야.  

 

 

그리고 이제 숙소로 귀가.
이렇게 히로시마 이튿날의 스케줄 반을 끝냈어.

 

이 다음은 좀 이따가 다시 적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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