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아파트 단지를 둘러쌓은 큰 담장을 온몸으로 올라가 놀고 있는 초등학생 둘을 보았다.
담장 위는 화단이라 큰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는데, 마침 꽃망울들이 하나 둘 터져 하얗고 작은 꽃이 불규칙적으로 여기저기 펴 있었다. 나 또한 그게 너무 예뻐 마음 속으로만 감탄하며 단지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에 발을 올릴때즘 ‘꽃 좀 봐! 너무 예쁘다!’ 하고 들린 남자아이의 목소리에 '진짜 예쁘다'며 공감하는 여자아이의 말에 내게도 저 두 아이 같던 시절을 함께 한 'K'가 생각났다.
우리는 어린이집부터 알던 사이로, '응답하라 1997'처럼 이웃사촌으로 엄마들이 먼저 친하게 지내고 있던 사이였다.
유치원생이던 당시 나는 동성친구들과 놀기보단 이성인 너와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다른 이성친구 이렇게 셋이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게 내겐 더 편했고 재미있는 일이었고, 우린 유치원에서도 유치원 밖에서도 늘 함께였다.
사진으로 찍어두지 못 한, 흐릿하게 기억나는 너와의 몇 장면들이 있는데_네가 우리 집 앞으로 찾아와 같이 골목골목들을 걸으며 등원했던 일. 하원해서 우리 집으로 와 침대 밑에 들어가 놀다 싸우고 '누가 너랑 다시 노나 봐라!'하고 헤어졌던 일. 주말이었을까? 하릴없이 동네 주택 사이들을 돌아다니며 목에 건 집 열쇠를 돌리다 잃어버린 너와 같이 등줄기가 서늘해져 그걸 찾겠다고 또 구석구석 찾아다녔던 날.
그런 작은 날들이 우리에게 있었다.
너는 작은 얼굴에 소처럼 큰 눈과 오똑한 코를 가지고 웃을 때면 시원하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멋진 어린이었다. 성격도 행동도 시원시원하고 귀여워 유치원 반에서 내로라하는 개구쟁이였지만 널 미워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는데,
그건 아마도 너의 다정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작은 동네였던 덕에 우리는 유치원을 졸업하고 같은 초등학교로 입학했다. 소규모 단체였던 유치원에서 대규모의 초등학교로 이동하고부턴 같은 반이 아닌 이상 하루에 몇 번 마주치지 못했고, 그즘부터 나는 이성친구들보다 동성친구들과 노는 게 편했기에 너와 노는 일은 90% 이상은 줄어들었던 거 같다.
다만, 여전히 우리 둘의 엄마는 친구였고, 엄마들의 안부전화에 우리도 곁들여 통화를 한다거나 같은 학원을 다니며 우정을 이어가고 있었다.
너는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산에서 길을 잃었던 그날을.
너희 엄마가 우리 집으로 너와 함께 왔던 날.
엄마들의 지루한 티타임을 못 이기고 우린 같이 알던 친구 S를 불러 가방에 물 한 병과 오락기를 넣고 셋이서 동네 산을 올랐었지.
그때는 '금정산'이라고 불리던 그 산은 오르는데 그다지 힘들지 않아 학교에서 소풍으로도 자주 가고, 가족끼로도 자주 간 산이어서 우리 셋 모두에게 익숙한 곳이었지만, 아직 저학년이었던 우리가 정상까지 가는 길을 알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날 등산하는 어른들을 따라 올라가면 될 거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올랐다가 하산하며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던 오후. (어떻게 길을 잃어버리게 되었을까?) 너희 둘은 엉엉 울고 나는 혹시 몰라 보이는 버섯을 따며 길을 만들어 걸었었지.
산은 정말 빨리 어두워졌다.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는 길을 한 줄로 서서 걷다 본 오두막 옆 화장실에 놓인 도끼를 보고 무한한 상상력에 서로 누가 먼저랄것 없이 소리 지르며 어딘지도 모르는 방향으로 튀었는데, 다행히 길을 잘 들었는지 시야가 점점 밝아졌다.
우린 아직 숲이었지만 우리 앞에 있는 넓은 밭 저 너머로 건물과 도로가 보이자마자 살았다며 서로 껴안고 신나게 밭을 뛰어 가로질러 나갔다.
아슬아슬하게 어두워지기 전 파출소를 찾아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경찰차를 타고 동네로 돌아오는 길.
경찰차 창밖으로 해가 붉게도 졌었다. 그날 입고 간 새하얀 학교 체육복 바지에 가득 붙은 강아지풀을 다 뜯기도 전에 경찰차는 우릴 동네에 내려다 주었고, 우리는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웃긴 얼굴을 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부모님께는 죽을 때까지 비밀이라며 같은방향 하나 없는 각자의 집으로 나뉘어 헤어졌다.
그날 나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엄마가 혹시나 나를 보고 추궁하지 않을까 싶어 잽싸게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부터 했던 거 같다. 너는 어땠니?
이 일이 있고 난 후 우리는 우리끼리조차도 다시는 그날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이제와 새삼 그날 집으로 돌아간 후의 네가 궁금해졌다.
너와 다시 같은 반이 된 건 5학년이 되어서였다.
그땐, 유치원 때와는 전혀 다른 사이가 되어 너와 나는 동성친구들끼리만 모여 놀았었다.
그때 나는 몰랐다.
네가 내 친구들에게 그렇게 인기가 많은 줄. 한창 이성에 관심이 생기는 나이에 내 친구들과 모여 반에서 누가 제일 괜찮냐 토론을 하면 꼭 너의 이름이 몇 번이나 나오곤 했다.
그게 다였다.
그렇게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각자의 친구들 안에서 놀게 된 초등학교 고학년의 시기엔 너와 어떤 추억거리 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게 너와 마지막 추억이겠다.
초등학교 바로 뒤에 있는 중학교로 우린 같이 진학했고, 그때 우리가 같은 반이었을까? 같은 학원을 다녔을까? 한 여름이었던 거 같은데 어떻게 같이 놀게 된 건지 기억나지 않지만 둘이서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녔지. 당시 '엽기적인 그녀'가 개봉중이었는데, 그걸 내가 보고 싶다고 했었나? 그냥 영화를 보러 가자고 그랬나... 여튼 동네에는 없는 영화관을 찾아 근처 상업지구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나는 처음으로 친구와 영화를 봤었다.
깔깔 함께 웃으며 영화를 다 보고 나와, 너와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 후덥지근한 공기가 약간의 바람이 될 정도로만 페달을 밟고 영화 감상을 주고받으며 우린 동네로 돌아왔다.
그 장면을 지금의 내가 봤다면 참 이쁘다하고 말했을텐데…
물이라도 마시고 가라며 너를 데리고 집으로 올라갔다가 당시 우리 엄마랑 사이가 틀어진 2층 아줌마의 괴롭힘을 너에게 토로하니 너는 나 보다도 몹시 화를 내며 어떻게 해줄까! 하며 먼저 물었고, 너와 나는 스릴 넘치게 우리 나름대로의 대응을 했지.
그리고 너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 특유의 시원한 미소를 띄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너는 어쩜 그렇게 다정할 수 있었을까?
그 뒤로는 우리의 엄마들도 너와 나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영화관 이후로 학교에서도 마주칠일도 학교 밖에서 마주하는 일도 없었고, 우린 고등학교도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진학했더랬다.
우연히 다시 연락하게 된 엄마들의 통화에 네가 어느 대학에 진학했으며 그 뒤로 어떻게 사는지 조각조각 주워 들었을 뿐.
그마저도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정말이지 너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너는 한때 정말 내게 손꼽히는 친구였는데, 유년시절엔 네가 나의 전부였던 시기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 모든 걸 오늘 나무 아래에서 같이 꽃을 본 두 아이를 보고 나서야 생각해냈다.
어떻게 너는 잘 지내니? 실상 구구절절 이렇게 글은 써도 어차피 나는 너를 찾지도, 연락할 생각도 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저 우리가 길을 잃은 그날, 금정산 정상에 올라 '야호'하고 메아리를 치고 싶었던 그 마음으로 너에게 안부를 묻는다.
고마웠고 어디서든 잘 살고, 잘 지내기를.
-너의 오래된 오래 전의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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