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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_편지/라오스

Dear.02_방비엥 일.

by 죠죠디 2022.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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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은 온통 파랬어.


그거 하나는 정말 맘에 들더라.
시각적으로라도 좀 시원하긴 했으니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 탈탈 거리며 돌아가는 먼지 가득 낀 선풍기에만 의존하기엔 버스 안은 이미 뜨거웠지. 후-하고 내뱉는 내 숨마저 싫어지더라.
잠이라도 들면 어떻게든 흘려보낼 시간이겠지만 벨벳 의자에 앉아있는 한 그럴 수 있을 리가.
내가 잠들 방법은 오직 하나, 탈진으로 인한 기절뿐. 흙먼지 일어나는 좁은 도로에 교통체증이라도 일어나면 어떻게든 기절을 노력해보려고 맘 먹고 있었는데,
어라? 버스가 점점 속도를 줄이더니 멈추는 거지. 음?? 뭐지?? 하고 늘어진 몸을 느릿느릿 일으키는데, 점심시간이라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간다고!!!


버스에서 남김없이 내린 승객 모두 기분이 한결 나아 보였던 건 내가 그래서 였을거야.
더위에 지쳐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던 버스 안이었는데, 휴게소 여기저기에 자리 잡은 승객들 사이에서 말소리들이 들리더라.
모두가 인내한 VIP버스 어때? 버스에서 내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확실한 소확행을 경험하고 싶다면 난 적극 추천할게.


맞다,
우리가 멈춘 그 휴게소 말이야. 거기가 커피 맛집이였어.


알다시피 나는 단 커피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거기서 주문한 아이스커피에(당연히 시럽은 안 들어갈 줄 알았음) 연유가 한 바가지가 들어가는 거야. 이미 끈적하게 떨어지는 연유를 멈춰달라 할 수도 없고, 그저 당황한 얼굴로 현란하게 커피를 섞는 바리스타의 솜씨만 믿고 받아들였지.
먼저 B가 한 모금하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길래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는데,





와... 너무 맛있더라.

혈관으로 당이 쭉쭉 퍼져 나가는 게 느껴지는데 웃음이 절로 나는 거 있지. 시원함과 당분의 힘이 그렇게 강력할 줄이야. 그 커피 덕에 방비엥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어.





방비엥 버스터미널에서 시내까지 무료 툭툭 서비스를 해줬어. 예전에 왔을 땐 시내에 내려줘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 같은데...

아, 아니네?
그땐 한참 새벽이던 중 버스에서 자다 허겁지겁 버스에서 내려져 툭,하고 떨어진 기분으로 도착했었다. 잠깐 앉아서 정신을 차리고 무작정 저 멀리 보이는 가로등 불빛만 보고 걸어 시내로 들어갔었지.

여기 어디에요??



여튼, 방비엥은 많이 변했더라.
그땐, 카페도 한국음식을 파는 큰 마트도 한글로 적은 메뉴들도 없었고, 숙소 가격도 그렇게 안 비쌌던거 같은데 말이지. 7-8년만에 온거니 변한게 당연한거겠지.
유심 따윈 개통하지 않고 도착해버린 덕에 오프라인 지도와 지난 밤 머릿 속에 꼭꼭 넣어둔 기억에 의존해 숙소를 찾아갔어. 예약도 따로 안하고...아니 적으면서 보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냥 갔나 모르겠네.


다행히 'DOMON G.H'엔 방이 남아있었어.
사실, 방 값이 알아온 것보다 저렴하지 않아 잠깐 고민하긴 했는데 알아온 숙소는 여기뿐이라 체크인을 안 할 수 없었지. 또 막 배낭 매고 다른 숙소 돌아다니면서 가격 묻고, 흥정하고 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하면…

나는 언제 행복해져?
내 행복 늦출 수 없잖아.



방은 3층이었어.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밟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좋아졌지. 묵직한 열쇠를 돌려 들어간 방의 넓은 화장실과 깨끗한 실내와 넓은 침대에 감동하던 찰나, 내 엄지만한 바퀴가 사사삭하고 벽을 타는 모습을 마주했어. 언젠가 겪을 일이라 생각하고 4년전 사둔 비오킬을 작은 병에 담아 배낭에 넣어왔는데, 그걸 꺼내는 것 보다 직원님의 손이 훨씬 빨랐지. 요 '귀여운 헤프닝'을 제외하고 DOMON G.H에서 지내는 3일동안 너무 편했어.

거기다 숙소에서 10초만 걸으면 야자수 아래 '꽃보다 청춘'에 나왔다며 한글로 친히 메뉴를 적어둔 맛있는 샌드위치 노점 가게에 닿을 수 있었어.
어디가 진짜 나온 곳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관없었어. 맛, 크기, 가격 뭐 하나 빠지지 않고 가득 가득 채워 손에 벅차게 담아주는데 매일 가지 않을 수가 없더라.



방비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샌드위치일 정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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