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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_생각/하루

여행_제주03_횽이와의 제주

by 죠죠디 2022.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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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시간보다 빨리 도착한 나는 협재 해수욕장 모래사장에 앉아있었다.



내도음악상가에서 처음 듣고 재생목록에 추가한 '데이먼스 이어_YOURS'를 무한 반복하며 나 빼고 물놀이를 신나게 했는지 온통 젖은 사람들 너머로 시선을 두려 노력했다.
안 그러면 답도 없이 나도 바다에 들어가 홀딱 젖고 싶을지도 모르니까....




해가 지는 무렵이라 선글라스 끼고 있는게 좀 수상해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해지기 전의 햇빛은 내 눈에 너무 진하다.
그래서 오늘의 일몰에 살짝 기대했는데 횽이와 함께 본 일몰은 기대 그 이상이었지.






언제 내 옆으로 왔는지 모르게 온 횽이와 만나 해수욕장 저 옆으로 한산한 모래사장으로 갔다.


퍼진 구름 사이로 타원형 동그란 빈 하늘 그 중간에 해가 떨어졌다. 해의 빛이 오색 가지로 퍼지며 물들였는데 잔잔한 바다에 비치면서 전혀 다른 행성에 와 있는 것 같이 만들었다. 언제라고 할 것 없이 내 생에 처음 보는 일몰이었다.



그 일몰을 다시 보는 날이 올까?




해가 완전히 젔고, 서귀포에 숙소를 잡은 우리의 갈 길은 멀었다.

너무 늦지 않게 온 202번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가는데 와…? 8시 넘어 탄 버스에서 11시에 가까워져서야 내릴 수 있었다.
제주 버스여행…녹록치 않아… 쉽지 않아.


 

 

 



길게 쓰고 싶지 않은 탈 많은 호텔 체크인을 끝내고 방으로 들어오니 시간은 열한 시 훌쩍 넘겨버렸다. 일몰 하나 보고 들어왔을 뿐인데 내일이 코 앞에 있다니요.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타임머신이었나?

 

 





다음날,
불멸의 등과 모기 약 때문에 두 시간밖에 못 잔 횽이와 그 옆에서 잘 잔 나는 아침 산책으로 '선녀탕'으로 갔다.

지난 여행에서 혼자 타박타박 걸어갔던 그 길이, 홀로 앉아 선녀탕을 바라보고 있던 그 시간에 횽이도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이뤄졌다.


(로또 1등 제발!!!!!!!이것도 이뤄줘랏!!!)



아직은 바닷물이 추워 수영할 생각은 안 하고 갔는데 우리 뒤에 온 강인한 사람 두 명이서 물에 뛰어드는 모습에 어어...?????? 우리 너무 나약했다. 그치?

물속에서 자유로이 수영하는 저 두 사람이 우리였어야 하는데.




 

 

한참을 앉아있고 싶었지만 우도에 가겠노라 계획한 탓에 엉덩이에 뭍은 돌 먼지를 털어내며 아쉬움도 탈탈 털어놓고 일어났다. 

우도 가는 배를 타러 성산항까지 가는데 2시간. 배편까지 합치고 우도 1시간 보고 바로 돌아온다고 해도 거의 여섯 시간이 걸리는 제주 뚜벅이 여행. 무자비하다 무자비해. 

 

그래서 계획 변경했다. 

나는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치유의 숲(예약제 입장이며, 운동화와 등산화만 입장 가능)으로, 샌들 신은 횽이는 자유시간을 갖기로 하고 씻고 낮잠 잤다. 사람이 여유가 있으니까 확실히 마음도 편해지고 잠도 더 잘 오더라?

 

 

 

 

만족스런 점심시간 후,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서귀포 동문로터리에서 치유의 숲까지 가는 버스는 둘도 셋도 아닌 단 하나!(625번)
그것도 하루에 4번 (9:46, 11:16, 13:31, 15:01.)

 

당시 내가 탄 버슨 15:01, 시간표에 표시된 막차로 그 의미는 뭐다?
치유의 숲에서 서귀포로 돌아오는 버스는 없으므로 두 정거장 앞인 헬스케어타운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것.(인도 없는 차도 옆 땅을 한참 걸어가야 함.)

 

근데 이걸 언제 알았냐? 치유의 숲에 도착해서. 헤헤.
하지만 어떻게? 그렇다고 다시 버스에 올라탈 순 없잖아? 그래서 생각만 해도 고될 귀가를 선택하고 치유의 숲으로 들어갔다. 

 

 

나 혼자 나무들에 휩쌓여 땅에 쓰러진 나무 위에 한참을 안겨있던 숲 길 어느 한복판.

 

예약하길 잘했지, 오길 잘했지. 백번 칭찬하며 숲길을 걸었다. 

초록의 이 넓은 숲이 내 것인 듯 한 이 경험을 어디서 할 일이냐며 높다란 나무들로 어두운 길을 걸으며 햇빛 잔뜩 받은 사람처럼 하늘 높이 치솟은 기분으로 피톤치드를 가득 마시며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생각보다 길은 그리 길지 않았고, 걷고자 한 산책길의 끝까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었다.

 

잠깐 쉬다 새로운 길로 다시 내려오는데 그 길 어느 지점부터 혼자가 되어 있던 그 순간,
외롭지도 서글프지도 않고... 뭐랄까 행복하다? 하고 느꼈다.

이게 정확히 알 수 없는 경로의 결론이라 아직도 나 스스로에게 어떻게 물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 정해진 듯 한? 정한걸 좋게 확인한 순간? 뭐 그랬던 거 같다. 잘 왔지. 잘 걸었다. 정말. 

 

 

버스를 타기 위해 오래도록 차도 옆 맨 땅을 걸었을 땐 서글프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정말 가길 잘했지.

 

 

13년만에 만났는데요...?

 

사실 숲에서 내려와서부터 정신이 없었다.

 

오늘 저녁, 금귤이와 횽이가 13년 만에 재회하게 되었다. 7시쯤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일찍 출발하게 된 금귤이 도착하는 시간 그즘에서야 나는 버스를 탈 예정이었고 어디에 가 있던 횽이도 아무리 빨리 돌아온다 해도 그 시간은 무리라고 했다. 

 

하지만, 나와 횽이는 금귤이 도착한 시간에서 그리 늦지 않게 호텔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해냈고 큰 지각없이 식당 앞에서 둘의 13년 만의 재회를 함께했다.  

 

 

어색하면 어떡하냐더니 예전 모습 그대로 같이 저녁을 먹고, 예쁘게 지는 노을 앞에서 따로 노을 사진 찍고 다음날 아침 비행기인 나는 금귤과 함께 다시 제주시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제서야 횽이와 맥주 한 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지... 어떻게 짠 한 번 하지 않고 여행을 마쳤을까.


이게 얼마만의 우리 제주여행이었는데?!

 

 

하는 수 없지.
제주 바다 앞에서 맥주캔 짠 하러 제주 또 가야지 뭐. 

 

 

5월 제주 여행기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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