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그림29 엄마덕분에 타인들과 정신없이 단순노동하고 있다 번쩍, 오늘 입고 나온 옷 다수가 다 엄마가 준, 엄마 것이라는 걸 깨닫고 번지는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마스크 안 했으면 숨기지도 못 한 미소가 들통나서 이상한 사람 될 뻔했는데 다행이지. 요즘 엄마는 몇 일에 한 번씩 내게 새 옷 혹은 엄마가 사두고 엄마 스타일과 정반대에 있는, 사이즈가 큰 옷들을 내게 준다. 한 삼~십~년전엔 엄마도 나도 서로 극 반대 스타일에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아 엄마가 주려한 옷은 보기도 전에 싫다며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는데, 몇 해전부터 극에 있던 스타일이 중립지역에 들어서면서 엄마가 입을래? 하면 뭐랄까... 살짝 기대가 된다. 그렇게 받은 올 겨울 옷만 바지 다섯 벌에 상의가 네 벌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옷을 입고 밖에 나가면 .. 2022. 12. 23. 완벽한 바캉스를 보내고왔지15 한 달 전부터 들은 캐럴 때문이었을까. 트리가 보고 싶었어. 피드를 타고 보다가 넓은 정원에 큰 트리가 놓인 사진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장소 미정이었던 이번주 바로 가게 되어서 좀 신났었어.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시간 맞춰 가려고 주차장에 내려 왔는데 핸드폰 놓고 왔쟈나… 늦겠다고 연락해야 하는데 핸드폰 집에 있쟈나… 늦어서 미안행. 부릉부릉 차를 타고 가는 길. 이제는 낙엽이 진, 가지뿐인 나무들을 지나가자니 올 한 해를 다 보낸것 같더라. 사계절 꼼꼼히 횽이와 함께 도로들을 탄 건 영광이야.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좁은 길을 따라가는데 꼭 상주에 내린 것 같았지. 우리 다시 경주여행 하는건가? 그랬어도 좋았겠다. (트리를 이토록 큰 트리를 보았다.) 불을 밝힌 트리를 보기 위해 식물 가득한 카페에서.. 2022. 12. 21. 올 겨울엔 튤립을 사러 갈거야. 아침 일찍 일어나 꽃시장에 가서 튤립구근을 사와야지. 그때 눈이 왔으면 좋겠다. 2022. 12. 19. 완벽한 바캉스를 보내고왔지14 오랜만에 공항철도를 탔어. 어디 멀리 가게 될 것만 같았지. 흐린 날씨는 이제 대수롭지도 않아. 쨍 하지 않아 눈이 편안하니 이 날씨가 나쁘지만도 않지. 이런 곳을 어떻게 찾는 걸까? 했는데 지난밤 새벽 3시가 넘도록 잠에 들지도 못하고 지도를 보고 찾았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헉_했어. 고맙고 미안하고 미안하고 고마워. 바다, 허름한 건물들 옆 신경 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산책로를 올라가니 내가 있는 곳이 제주인가. 자꾸 곧 밀항선이 올 거라고 부모님께 편지 쓰고 왔냐고 했는데 어케 알았지? 진짜 나 편지 쓰고 나왔는디...? 근데 사실 밀항선 손톱만큼 발톱만큼 심장 발랑 발랑하긴 했다. 왜, 정자에서 아주 작은 배 하나가 지나가는 걸 봤잖아. 곧바로 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작디작은 저 배 위에 선.. 2022. 12. 7. 완벽한 바캉스를 보내고왔지13 11월 내내 축하를 해주신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지만 사실 즐기고 있어. 이날부터였나? 뽀얗게 안개낀 물 풍경을 보게 된 것이? 만나는 날에 비가 온다고 예보가 뜨는 날이 되는 게? 횽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실은 나 이런 날씨 정말 좋아해. 그뿐 아니라, 저녁 즈음 시골집 연통을 통해 나는 하얀 연기를, 겨울 숨을 뱉으며 내는 입김이, 갓 내온 따뜻한 음식의 뜨거운 열기가, 물에 핀 물안개와 가시거리 안 나오는 안개 모두 다. 파란 하늘이었다면 또 그 날씨에도 좋았을 풍경이었을 거야. 그래도 이미 내가 안에 있는 그 날씨를 바꾸고 싶지 않았어. 강을 옆에 끼고 짧게 산책하고 카페로 들어가 횽이 사준 호두파이에 초를 꽂고 온전히 축하를 받고 소원을 빌었어. 말하지 않지만 내 소원은 횽을 만나고 난 후로.. 2022. 11. 24. 완벽한 바캉스를 보내고왔지12 차근차근 숲길일 줄 알았던 산책로를 걸어 내려왔어. 서울은 아직 춥지않아 시간여행자처럼 계절을 뛰어넘으며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서울 한복판인 경복궁, 안국을 걷자니 다급한 인파들과 바쁜 차들에 섞여 와글와글해지는 게 바쁠 거 하나 없는데 바쁘게 사는 사람이 된 것 같더라. 내가 원한건 이런 바쁨이 아니었는데...? 안국역을 지날 일은 없었지만 횽을 끌고 '열린송현'으로 갔잖아. 궁금했어. 이 길을 다녔던 때부터 항상 높다란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어 여긴 도대체 뭘까? 했었거든. 이유도 모르고 버려진 땅 같은 곳을 여러번 지나다니니 궁금함도 사라지고 이젠 더 이상 예전만큼 자주 다니지도 않아 심지어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겨울에 뿅 하고 열린 열매처럼 오픈했다는 거지. 꽃이 예쁘게 펴있던 사진 속과는 다르게 .. 2022. 11. 23. 요즘 재미 요즘 눈을 뜨자마자 손을 쓴다. 당고가 먹고 싶어 앓다 결국은 찹쌀가루를 사서 경단 만들기를 시작으로 당근 샐러드와 김밥 베이글 샌드위치까지. 일어나자마자 바삐 바삐 손을 움직여 아침을 만들어 먹었다. 하나도 귀찮은 거 없이 만족감 100% 내가 손을 많이 움직이는 일을 좋아하는구나, 결과물이 확실하게 나타나는 일에 큰 만족을 느끼는구나. 해서, 여전히 손을 써서 만들어 먹는 아침. 작은 소망이 있다면 오븐 사고 싶다? 에어프라이어도 버려서 구워 먹는 게 힘들어졌는데 쿠키 너무 굽고 싶다. 시나몬 롤 만들고 싶고 나 또 뭐하고 싶었지? 밀가루 치대서 이것저것 만들고 싶다. ... 부전공으로 조리나 요리를 했어야 했네. 2022. 11. 17. 샀다 치고 잠깐, 왜 파이프와 곰방대를 생각했더라? 곰방대는 너무 갔다고 생각하고, 파이프는 늘 갖고 싶었다.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부터였을까? 외국 드라마, 영화에서 봤던 이미지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지난날, 프라하를 여행하던 중 파이프 상점을 몇 번 지나쳤다. 그 중 한 번은 멈춰 서서 유리창 너머 진열장을 세심하게 봤던 기억이 있다. 디자인, 가격들을 살펴보니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진지하게 살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돌아왔었는데 그러지 말걸. 귀찮을 수 있는 피우기까지의 과정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 시간에 집중하고 있을 내가 보기가 좋다. 손을 계속 움직이고 꼼꼼히 일을 마친 후 결국에는 입에 파이프를 물 모습이 그려지잖아. 그래서! 찾아봤다 파이프 사용법. 과정은 뭐 괜찮았는데 .. 2022. 11. 16. 완벽한 바캉스를 보내고왔지9 느긋하게 준비한 건 아니었는데, 좀 느리게 움직였나봐. 만나기로 한 시간에서 한 시간을 더해서야 만나기로 한 장소는 몇 년 전 겨울 내내 매일 오갔던 경험이 가득한 곳이었지. '구파발' 나는 여기만 생각하면 그렇게 손, 발, 코... 모든 감각들이 시려와. 횽이 생각해둔 곳은 시간이 늦어 못 가고 대신 산책로가 있다는 카페로 버스를 타고 가는데 나 또 어디 여행 가는 것 같고 그래서 좀 두근했쟈나. 처음 가는 낯선 길을 불안함 없이 갈 수 있는 일은 내가 용감한 것보다 함께 하는 사람의 힘이 더 크다는 걸 매번 횽을 만나는 날 경험해 나. 도로 중간 덜렁 세워준 정류장이었지. 바스락 낙엽들이 떨어진 길을 얼마 걷지 않았는데 공기부터 다르더라. 서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청량한 공기와 트인 시야를 갖게 될 .. 2022. 10. 31. 완벽한 바캉스를 보내고왔지8-2 경주를 떠났다. 일어나자마자 최영화 빵 사러 나갔던 아침 산책이 마지막 경주의 일정이었다.(산책 메이트: 칼바람) 언제고 떠나야 했지만 막상 그러자니 서로 인사 없이 몰래 떠나는 기분이었다. 내 마음 한 조각 여기 아무 곳에 흘려둔 게 이렇게 마음을 무겁게 할 줄이야. 오래전부터 지도에 찍어둔 별 중 하나였던 '문경새재'에 들르기로 했다. 거기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가 있다는 피드를 본 후 '아름다움'에 꽂혀서 간직, 간직해둔 장소였다. 언제든 가봐야지 했는데 그게 이번 여행 마지막 일정이 되었지. 날이 또 새파랗게 좋았다. 왜 현실로 돌아가는걸 힘들게 자꾸 이러는 거지? 한산한 도로를 지나는데 이전까지 별말 없던 횽이가 야생동물 주의 표지판이 나오면 '꼬라늬' 하고 소리를 냈다. 꼬로록 하고 내는 .. 2022. 10. 30. 완벽한 바캉스를 보내고왔지8-1 새벽 내내 바람이 와장창하고 불었어. 태풍이 온건가 싶었는데 일어나 창문을 여니 지난밤 흐린 하늘 속 구름을 데려가느라 그리 세게 불었나 봐. 새파란 하늘이 맑디 맑았지. 부는 바람의 세기를 아침에 기억한다는 건 깊이 잠을 못 들었다는 이야기지_나도 횽아도. 당연히 피곤했을 테지만 피곤해하지 않았던 건 '경주', 오늘 경주에 가기 때문이었어. 원래 이번 여행의 목적지가 경주였잖아. 둘 다 아주 오랜만이자 갈망한 곳이었는데 생각해보면 또 딱히 좋아하는 곳, 하고 싶은 게 있는 게 아니었지. 순수하게 경주에 오고 싶었네 우리? 이미 알고 있겠지만 횽아, 경주 가는 중에 지났던 '광명동' 풍경이 진짜 여전히 너무 생생하다 나.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에 카페인 한 톨도 안 마셨는데 두근거리며 반응하는 심장에 아.. 2022. 10. 29. 운동일기는 아닌데 운동일기라고 치고 지난 비 오는 날, 운동 가려고 밖에 내다봤더니 비가 적당~~히 오길래 챙겨서 내려갔더니, 하? 이거 봐라? 아주 폭우가 따로 없어. 한 걸음 내딛을때마다 더 세게 내리는 비에 욕하면서 온 몸을 한 껏 접어 조심히(걸어 봤자 이미 내 발, 바지는 다 젖고, 어깨랑 등도 젖고) 걸어 센터에 도착한 순간, 네, 비가 멎어갑디다. 쉬이바... 2층인 헬스장 올라갔더니 비 안 오던데? 미친 거 아니야 진챠. 덕분에 받은 열에너지로 운동 잘했습니다 녜녜 ^^7 아주 고맙습니다 이 날씨새끼야. 2022. 10. 8. 완벽한 바캉스를 보내고왔지7 생전 처음 타는 버스와 처음 가 본 동네. 에 의심하지 않고 덤덤히 가게 되는 힘은 그곳을 제안한 사람이 횽이라서라는 걸 여기에 적어. 분명 가을을 즐기러 나왔는데 실내로 무자비하게 들이닥친 햇빛 덕에 버스 안은 아직도 여름이더라. 그게 올해 여름, 바다로 데려다주던 버스와 같은 실내와 얼추 뭐 비슷한 이동시간에 바다에 가는 걸까? 싶었어. 그도 그럴게 이 날,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좀 몽롱했거든. 해가 꼼꼼히도 닿는 쪽에 앉은 나는 금방 잠에 들었는데 자꾸만 내 피부를 타고 올라오는 햇빛 때문에 몸을 조금씩 돌리다 결국 반대쪽으로 아예 몸을 틀어 앉아 갔잖아. 맞은편에 앉은 승객도 숙면중이였는데 안 그러셨으면 좀 불편하셨을지도…? 혹시 못 일어날까 봐 맞춰둔 알람에 주섬주섬 정신을 챙겨 내릴 준비를 했.. 2022. 10. 8. 너의 여름방학_05 그랬니...?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볼품없어 보일까 봐 걱정해준 거니까... 근데 가끔 너는 너무 독설가라 뭐랄까... 아니 그냥 그렇다고. 너는 계속 너로 자라렴. 쭉- 내가 너에게 네가 자라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익숙해져 볼게. 2022. 9. 27. 너의 여름방학_04 네가 막 태어나고 나서 나는 얼른 너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어. 울음소리와 옹알거림을 지나 우릴 부르는 단어들 그리고 따라 말하던 엉성한 문장들이 곧 너의 눈과 귀를 통해 들어온 너의 이야기들을 말하게 되었땐... 평범하리 평범한 일상의 것이었지만 늘 세상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 같았지. 특히, 너의 꿈이 말이야. 너는 공룡이 되고 싶었다가 어부가 되고 싶었다가 지금은 길게 간직하는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어 하지. 하지만 나는 네가 꼭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기보단, 타인에게 무해한,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물론, 이건 내 생각이고 네게 말 할 생각도, 그럴 이유도 없었지. 그저 내 생각일 뿐이니까. 그걸 잊고 있었지. 샤워를 하는데 왕왕 거리는 소리에 얼른 .. 2022. 9. 19. 완벽한 바캉스를 보내고왔지6. 종묘에 가고 싶었다. 덕수궁,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숱하게 다녔는데 종묘, 종묘만 가보질 못 했다. 가야 할 이유가 딱히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름답다고 하니 (혼을 모아둔 장소를 아름답다고 해도 되려나...?) 보고 싶었다. 그래서 횽에게 종묘에 가자고 했다. 비가 온다고 했나? 꾸물거리는 날씨가 쫓아오지 못하게 버스를 타고 몇 개의 동네를 너머 중구에 도착하니 버스 유리에 물 방울이 떨어졌다. 내가 비구름을 따라간 건가... 먼저 도착한 횽이가 있는 카페로 가니 노랑 노랑하니 귀여운 겉모습 속 헤비메탈의 영혼이 숨겨져 있는 곳이었다. 가득 찬 사람들의 말소리도, 매장 내에 틀어놓은 음악 소리도 둘 중 누구 하나 질 생각 없다는 듯 사운드 세게 터져 나왔다. 횽이가 한산한 카페를 생각했다는데 종로는 .. 2022. 9. 17. 너의 여름방학_03 방학엔 왜 숙제가 있을까. 숙제가 없으면 안 되는 걸까? 시키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둘 다 즐겁지 않은 거 없앴으면 좋겠다고, 너의 여름방학에 생각했다. (네가 좋아하는) 책 읽고, TV볼 때는 그 누가 네 옆에서 춤을 춰도 집중하는 넌데, 숙제만 하려하면 갑자기 집 안 물건들에 관심 갖고 창 밖만 바라봐도 흥미로워하며 회피하는 너를 보며... 나를 보는 느낌...지울 수 없어. 다음날도 너의 숙제를 위해 집 앞 도서관을 갔었지. 앉을 장소들이 자유롭게 널린 곳에서 너는 이곳저곳 앉아서 구몬을 간신히 끝내고 다른 숙제를 들고 갔는데, 3초에 한 번씩 자세 바꾸며 꼼지락 거리는데 옆에 펼쳐놓은 책이랑 그... 싸웠어? 끈기 있게 너 보고 있었는데 화해 안 하더라? 나랑 눈 마주치고 살짝 흠칫해 하긴 했지만.. 2022. 9. 16. 너의 여름방학_02 너와 보내는 너의 여름방학 첫날, 운동 끝나고 돌아와 포켓몬스터 보고 있는 너에게 재미없게도 나는, '아침 먹었어~?' '양치했어~?'하고 물었지. 같이 보자고 할 수 있었을 텐데... 러닝머신 위에 그런 센스를 놓고 왔다고 생각해주렴. 한 여름, 실내 온도 33도쯤 돼야 에어컨을 틀어주시는 할머니를 설득하는 건 포기하고 나는 너의 손을 잡아끌고 단지 내 카페로 갔다. 더위를 잘 타지 않는 너를, 타고난 집돌이인 너를 데리고 나오는 건 시간이 조금 걸리는 일이긴 했지만 집 안에서 너는 포켓몬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 같더라. 너도 나처럼 나가기 전까지는 온갖 것들에 귀찮아하고 피곤해하며 게으름 피우지만 정작 문 밖으로 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기가 넘치더라.(아, 이건 너만 나는 생기 안 넘쳐 .. 2022. 9. 15. 이전 1 2 다음 728x90